감옥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맛 • 비하인드 바

May 28, 2021
감옥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맛 • 비하인드 바

홍콩의 100년 된 감옥에 칵테일 바가 들어섰습니다. 감옥에서 한 잔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지만, 진짜 술맛 돌게 하는 비결은 따로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맥락을 아예 없애버리지도, 감옥이라고 해서 너무 어둡게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공간 재생의 기술을 엿보고 싶다면 이름부터 남다른 '비하인드 바(Behind Bars. 수감 중이라는 뜻)'를 눈여겨 보세요.

홍콩 구도심을 걷다보면 전당포가 블록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압(押)'이라고 쓰여져 있는 간판이 모두 전당포입니다. 세계적인 금융 허브 도시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왠 전당포일까 싶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은행 이용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야 신분증만 있으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지만 홍콩에서는 매월 일정한 소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개설하고 나서도 일정 금액 이상 예금 잔고를 유지해야 하고, 유지하지 못하면 매달 은행에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계좌 개설조차 까다로우니 대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은행보다 전당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당포라고 해서 후미진 곳에 있거나 영세하지 않습니다. 번화가 노른자위 땅에 자리하고, 프랜차이즈 전당포도 있으며, 유명 전당포 중 하나는 주택 자금 대출 사업도 할 만큼 홍콩에서의 입지가 단단합니다.

우청 전당포 건물은 도보 5분 거리에 트램, 지하철, 버스 정류장과 완차이 시장이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합니다. 왼쪽 윗편에 우청 전당포(和昌大押)라는 간판이 130년간 유지되고 있습니다. ⓒasianfiercetiger

번화가 중의 번화가 완차이 지역도 전세권(전당포 세권)입니다. 그 중에서도 130년 된 우청 전당포의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우청 전당포는 야외 발코니와 석조 기둥, 높은 천장 등 고풍스럽고 웅장하기까지 한 19세기 영국 식민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도로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 4층에 달하는 꽤 규모있는 건물임에도 유려한 인상을 줍니다. 아쉽게도 이 역사적인 랜드마크에서 더 이상 전당포 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전당포가 홍콩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라고 해도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곳은 문화유산 보존지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존지라고 해서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더 폰(The Pawn)'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와 있습니다. 용도는 바뀌었지만 외양은 물론 내부 구조와 장식도 그대로입니다. 발코니에 앉아 트램이 지나가는 걸 내다보노라면 130여 년 동안 이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 사람들이 상상됩니다. 우청 전당포 건물 외에도 세월의 더께가 두터운 전당포 건물들이 레스토랑, 바, 카페 등 새로운 쓸모를 더하며 속속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전당포가 홍콩인들에게 친숙한 건 어쩌면 이렇게라도 곁에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한때 홍콩도 효율이나 경제 논리에 따라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을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초고층 빌딩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에 주권 반환 이후 홍콩인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들을 설명해줄 만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홍콩 정부가 2008년 '역사적 건물 재활성화' 프로젝트를 출범하면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도시 곳곳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타이쿤(Tai Kwun)도 그렇게 다시 태어난 공간 중 하나입니다. 1841년 홍콩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그 해부터 도심 한복판에 경찰서, 법원, 감옥을 차례로 지었습니다. 화강암과 벽돌에 기초한 빅토리아 건축 양식으로 오랜 기품이 있습니다. 16개 건물이 사적으로 공식 지정되었음에도 박물관으로 박제하지 않고 현대적인 상업 시설들을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그 중 칵테일 바 '비하인드 바(Behind bars)'가 돋보입니다. '수감 중'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감옥을 컨셉으로 한 바입니다. 하지만 컨셉만 게으르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감옥의 구조와 맥락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노력들이 엿보입니다. 옛 감옥으로 단순히 인테리어의 재미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옛 감옥이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구현했습니다.

독방을 프라이빗룸으로

빅토리아 형무소 E홀의 복원 전 삼엄한 모습입니다. ⓒDavid Hodson ⓒHong Kong Memory

빅토리아 형무소는 홍콩 최초이자 가장 오래 운영한 감옥입니다. 재밌게도 홍콩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 바로 이 감옥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식민 시대, 제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그 중 비하인드 바가 있는 E홀은 1인용 독방이 모여있던 3층짜리 건물입니다. 좁고 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1평 남짓한 10여 개의 독방이 줄지어 있습니다. 복도에는 3층까지 뻗어있는 노출형 계단이 있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순찰했을 교도관의 삼엄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비하인드바는 이러한 공간 구조와 맥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낮 시간에는 각 독방에 쇠창살을 쳐두다가 저녁이 되면 쇠창살을 열어 젖힙니다. 자유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이 해방감은 독방 안에 들어가도 유지됩니다. 양 옆을 터 둬서 옆방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리 답답하지 않습니다. 어느 방에 있든 가장 끝 편에 있는 독방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독방의 옆 벽을 트되 외곽 프레임을 남겨두어 답답하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도 지킵니다.

그러면서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집니다. 옆 벽을 완전히 터 둔 것이 아니라 외곽 프레임을 남겨두어 자연스럽게 방이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이러하니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방 단위로 이동합니다. 굳이 다른 독방들을 거쳐 지나지 않고 쇠창살을 젖힌 각각의 입구를 통해 출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 방마다 앉는 방향이 모두 동일합니다. 복도를 바라보고 앉는 것이 기본이고 일행이 더 많을 때는 복도를 등지고 앉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같기에 다른 방으로부터 불필요하게 시선을 받는 일이 줄어듭니다. 감옥이었을 때는 독방이 사무치게 저주스러웠겠지만, 비하인드 바에서의 독방은 오붓함의 원천입니다. 구조가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주문한 음료를 가져가는 공간을 독방 하나에 따로 마련해 고객이 앉는 라인의 반대편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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