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담아 잡지를 닮은 도서관 • 보븐

May 27, 2021
잡지를 담아 잡지를 닮은 도서관 • 보븐

좋아하는 잡지가 있나요? 그렇다면 그 잡지의 모든 과월호를 갖고 계신가요? 전자에는 고개를 끄덕여도, 후자에는 고개를 가로 젓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관심사에 대한 최신 트렌드와 양질의 정보를 담고 있어 매력적인 잡지지만, 모든 호를 구비하고 보관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잡지를 꾸준히 구독하는 사람들에게도 빛바랜 과월호들은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이베이에는 잡지 애호가들의 이런 애환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잡지 도서관 '보븐(Boven)'이 있습니다. 게다가 보븐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운영되는 많은 도서관들과 달리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매장입니다. 보븐은 과연 제품은 '잡지', 비즈니스 모델은 '도서관'으로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을까요?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각 카테고리별로 손꼽히는 브랜드들만 입점해 있는 최고급 백화점의 한 층에 도서관이 들어선다면 어떨까요? 이질적이지만 이상적인 이런 조합은 아시아 최초의 디자인 도서관이자 지적 즐거움의 원천인 '태국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센터(Thailand Creative and Design Center, 이하 TCDC)'의 초기 모습입니다.

TCDC는 2005년에 처음 설립 당시, 방콕 최고의 부촌에 위치한 '엠포리움(Emporium)' 백화점의 6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TCDC는 절판된 출판물을 포함해 7만여 점의 미술, 건축, 패션, 사진, 영화 등 디자인과 관련된 넓은 분야에 걸친 자료를 대여해 줍니다. 양질의 정보를 찾아 헤매는 데 막대한 시간을 쏟던 디자이너들에게는 천국같은 공간이 탄생한 것입니다. 2016년에는 물리적 범위를 넓혀 하나의 지역을 '창조 지구(Creative District)'로 만들고자 방콕의 방락(Bang Rak)이라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자리를 옮기면서 기존의 도서관 기능은 물론, 코워킹 공간까지 제공하여 포괄적인 크리에이티브 허브로서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설립된 이래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TCDC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방콕을 방문합니다.

TCDC에서는 디자인과 관련된 전방위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TCDC

TCDC의 도서관 공간은 크게 '읽는 공간'와 '일하는 공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읽는 공간에는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책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의 소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하는 공간에서는 개인 노트북을 가진 사람들이 쾌적하게 작업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데스크탑도 설치해두어 누구나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배려한 것입니다. 도서관 공간 외에도 전시 공간, 멀티미디어 공간, 카페 등을 함께 갖추고 있어 다방면의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콕의 TCDC에서 디자인 영감뿐만 아니라 사업적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곳이 있습니다. 타이베이에 위치한 대만 최초의 잡지 전용 도서관 '보븐(Boven)'입니다. 보븐의 공동창립자들은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식과 정보를 한 장소에서 공유하는 TCDC의 가치와 결과물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이전부터 출판물, 문학, 디자인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이들은 10년 넘게 모은 잡지를 기반으로 잡지 도서관을 기획합니다. 양질의 잡지들을 마음껏 제한없이 빌려볼 수 있는 보븐에는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아끼면서 정보도 얻고, 절약한 시간과 돈으로 더 의미있는 것들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정부가 운영하는 TCDC와는 다르게 수익을 내는 사업장으로서 비즈니스 모델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잡지를 선택한 이유

잡지는 책과는 속성이 다른 매체입니다. 특정 주제 혹은 분야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잡지와 책이 유사하지만, 잡지는 단행본보다 더 빠른 주기로 발행되기 때문에 최신 트렌드와 깊이 있는 취향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한 번의 발행으로 출판이 완료되는 단행본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발행되어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잡지의 이러한 특성에서 보븐은 사업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개인이 보고 싶은 잡지들의 모든 호를 구비하기가 어렵고, 매번 최신호를 구매하고 보관하기에는 경제적, 공간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보븐의 이러한 접근은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개념으로 유명해진 일본 서점 츠타야(Tsutaya)의 초기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츠타야를 설립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대여 매장의 본질을 '있으면 좋겠지만 매 순간 필요한 것은 아닌 특수한 상품을 소장해 두는 곳'이라고 말하며, 도서, 음반, DVD 등을 대여해 주는 대여점으로 시작했습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설명과 츠타야 초창기 모습처럼 잡지는 대여점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소재입니다. 관심사가 확실한 사람들이 꼭 읽고 싶지만 늘 집에 소장하기는 부담스러운 성질의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창립자들이 잡지 도서관을 연 이유는, 단순히 잡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잡지의 속성과 대여점의 본질을 이해한 결과입니다.

보븐은 책을 중심으로 대여하는 보통의 도서관과는 달리 잡지만을 빌려주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입니다. 새롭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븐은 유의미한 원칙을 중심으로 자신이 설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잡지를 보고 싶지만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동시에 지적인 호기심과 취향을 가진 고객들 사이에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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