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임수라면 환영할게요 • 벗 위 러브 버터

Oct 28, 2021
이런 속임수라면 환영할게요 • 벗 위 러브 버터

목 좋은 위치에 눈에 띄는 매장 vs. 찾아야만 보이는 매장

여러분이라면 어떤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 또는 유명한 상권의 핵심 입지에 매장을 낸다면 고객 유치에 유리할 수 있지만 임대료가 높아 고정비 부담이 커집니다. 반면 매장의 위치에 상관없이 고객이 찾도록 만든 매장은 우연한 유동인구 유입에는 불리할 수 있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기획력이 있다면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특히 자본에 한계가 있다면 더욱 후자를 선택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입니다.

숨어 있어도 찾고 싶은 매장을 만들고 싶다면 매장을 숨기는 컨셉의 대표 격인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피크이지 바는 1920년 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서 유래했습니다. 의료 또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주류 외에는 양조 및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는데, 이 때 술집의 모습을 감추고 몰래 영업을 하던 바들을 스피크이지 바라고 불렀습니다. 금주법이 폐지되고 몇십 년 동안 잊혀졌던 스피크이지 바는 뉴욕의 '플리즈 돈 텔(Please Don't Tell)'과 함께 2000년대 후반부터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리즈 돈 텔은 핫도그 가게 안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바로, 전 세계적인 스피크이지 바 붐을 이끌었습니다.

현 시대의 스피크이지 바는 영업을 숨기기 위한 목적 대신 숨은 매장을 찾는 재미를 위해 매장을 감춥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도 흥미로운 스피크이지 바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 <킹스맨>을 모티브로 한 '르 키에프(Le Kief)'는 테일러 숍으로 둔갑해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습니다. 르 키에프는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고,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도 평범한 테일러 숍처럼 보입니다. 중국어 상호명도 '링주양푸(菱玖洋服)'로 '양복'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정]ⓒLe Kief.jpg
ⓒLe Kief2.jpg
르 키에프의 매장입니다. 매장 전면의 유리창 안에 양복을 입은 마네킹이 있는 것은 물론, 매장 내부에도 여느 양복점과 다름없는 양복, 구두, 셔츠 등이 걸려 있어 술집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Le Kief

바의 입구는 테일러 숍 벽에 있는 커다란 거울입니다. 술집으로 통하는 거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암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암호는 '링주'와 음이 비슷한 숫자 '09'입니다. 거울 옆에 있는 전화기에서 0과 9를 누르면 커다란 거울 문이 열리면서 술집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 등장합니다. <킹스맨>에서 테일러 숍 안에 지문 인식 기능이 있는 거울 위에 손을 대면 거울이 열리며 비밀 장소가 나타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치 <킹스맨>의 아날로그 버전 같습니다.

그런데 타이베이에는 스피크이지 바도 아닌데 테일러 숍 뒤에 숨은 매장이 있습니다. 르 키에프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벗 위 러브 버터(But. we love butter)'입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곳에서는 최상급 버터가 아낌없이 들어간 쿠키를 판매합니다. 여느 스피크이지 바처럼 겉에서는 쿠키 매장인지 알아차릴 수 없어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테일러 숍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이라도 벗 위 러브 버터가 매장 앞에 테일러 숍을 내세운 이유도, 방문한 고객이 할 수 있는 경험도 다릅니다. 이 개성 넘치는 쿠키 가게는 테일러 숍을 어떻게 활용했을까요?

제외 (7).jpg
테일러 숍의 모습을 한 벗 위 러브 버터입니다. ⓒ트래블코드

이유있는 반전이 있는 매장 경험

벗 위 러브 버터의 테일러 숍은 매우 그럴 듯 합니다. 보통의 스피크이지 바에서는 입구를 감추기 위한 공간이 직접적으로 매출을 내지 못하기에 많은 면적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벗 위 러브 버터의 테일러 숍은 맞춤 양복을 판매해도 될 법한 면적과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련된 디자인의 각종 양복과 셔츠, 타이, 구두 등이 현실감을 더합니다. 회화 작품으로 치면 마치 하이퍼 리얼리즘 같습니다. 테일러 숍에 들어온 고객은 이 곳을 테일러 숍으로 착각하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속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본진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솟아 오릅니다.

제외 (14).jpg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양복, 구두, 셔츠, 타이 등이 진짜 테일러숍을 방불케 합니다. ⓒ트래블코드
제외.jpg
피팅룸은 총 3개입니다. 3개의 문 중 하나만이 쿠키 매장으로 통해 있습니다. ⓒ트래블코드

벗 위 러브 버터는 사실주의 테일러 숍으로 정체를 숨기고 반전 있는 고객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매장 밖에서도, 안에서도 버터 쿠키 가게가 아닌 양복을 파는 테일러 숍처럼 보이지만 매장 안쪽에 위치한 피팅룸에서부터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테일러 숍에는 3개의 피팅룸이 있는데 이 중 하나는 버터 쿠키 매장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피팅룸을 통과해 계단을 내려가면 비일상적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버터 쿠키 매장이 펼쳐집니다. 클래식한 테일러 숍의 피팅룸에서 통통 튀는 감성의 버터 쿠키 가게를 만나는 경험은 갓구운 쿠키만큼이나 신선합니다.

06.jpg
테일러숍과 쿠키 매장을 연결하는 계단입니다. ⓒ트래블코드
08_비율 조정.jpg
벗 위 러브 버터의 매장 내부입니다. ⓒ트래블코드
새로운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세상의 앞선 생각을 업데이트해 드릴게요!
Great! Next, complete checkout for full access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Welcome back! You've successfully signed in.
You've successfully subscribed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Success! Your account is fully activated, you now have access to all content.
Success! Your billing info has been updated.
Your billing was not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