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용품 매장이 미술관에서 멀어지려는 이유 • 카스 아트

May 26, 2021
미술용품 매장이 미술관에서 멀어지려는 이유 • 카스 아트

‘카스 아트’는 미술용품을 반값에 판매합니다. 예술을 부의 상징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가격만 낮춘다고 그들의 바람처럼 동네를 예술가로 채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요?

‘붙잡히지 말 것’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암묵적인 룰입니다. 스트리트 아트가 거리를 감각적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일이므로 원칙적으로는 불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적용에 있어서는 인심이 후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현장에서 걸리지만 않는다면 사후에 추적해서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티스트들은 20분 내로 작업을 하고 도망칠 수 있는 정도로 작품을 구상해 그들의 예술성을 뽐냅니다. 20분 정도를 경찰관들이 CCTV를 보고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시간 제약이 예술 활동을 하는 데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기 위해 표현 방식에 창의성이 더해지고 작품에 시그니처가 생깁니다. 대표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는 뱅크시(Banksy)입니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풍자를 담은 그래피티 작품들을 주로 그리는데,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텐실 기법을 사용합니다. 스텐실 기법은 종이에 글자나 그림 등을 그려 오려낸 후 그 구멍에 스프레이를 뿌려 작품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벽에 대고 스프레이만 분사하면 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작품을 그리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는 뱅크시의 작품입니다. 뱅크시가 유명해지자 커버를 씌워 작품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아트에는 그래피티 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 클렛 아브라함(Clet Abraham)은 교통 표지판을 캔버스로 삼고 표지판의 기호들에 스티커를 붙여 스트리트 아트를 표현합니다. 사전에 제작한 스티커를 교통 표지판의 적절한 위치에 붙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걸릴 가능성이 낮습니다. 교통 표지판이 가진 퉁명스러움과 엄격함을 비판하기 위해 스티커 작품으로 유머와 위트를 더한 것입니다. 규칙과 규율에 인간성을 더하고자 하는 시도에 표지판에 생기가 돕니다.

교통 표지판에 스티커를 붙이는 클렛 아브라함의 작품입니다. 그의 스트리트 아트 덕분에 표지판에 위트가 생깁니다.

클렛 아브라함이 표지판을 캔버스 삼았다면 조네시(Jonesy)는 표지판을 지탱하는 봉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봉 위에 청동으로 주조한 작품을 접착하여 스트리트 아트를 완성합니다. 그가 봉 위에 주목한 이유도 단속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찰들이 쓴 모자 챙 때문에 상단의 시야가 가려져 있어 작품이 눈에 잘 안 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거리를 두고 보면 보이겠지만, 경찰관의 대표적 오브제인 모자 챙을 작품의 스토리에 녹여내 스트리트 아트에 스릴을 더합니다.

표지판의 봉 위에 스트리트 아트를 표현하는 조네시의 작품입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단속을 피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만 걸리지 않으면 괜찮기 때문에 과감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예술 작가도 있습니다. ‘벽 위의 내 얼굴(My face on the walls)’이라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레고스(Gregos)는 다양한 표정의 자기 얼굴을 조소로 복제한 후 그 위에 유머코드가 있는 그림을 입혀 거리 곳곳에 붙입니다. 주로 건물의 벽이나 기둥 등 원래 있었을 것만 같은 자리에 골라 붙여서 오히려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때로는 벽면에 설치된 CCTV 옆에 붙이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 얼굴을 조소로 복제해 그 위에 그림을 그려 거리 곳곳에 붙이는 그레고스의 작품입니다. CCTV 안내문이 붙어 있는 벽면에 작품을 표현한 대담함이 돋보입니다.

보통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단속을 피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면, 벤 윌슨(Ben Wilson)은 작업 과정을 보란듯이 드러냅니다. 그의 캔버스는 길바닥에 눌러붙은 추잉껌입니다. 버려진 추잉껌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쓰레기이기 때문에 단속의 대상이 아닙니다. 처벌을 하려면 껌을 뱉은 사람을 찾아야지 버려진 껌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그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오히려 껌 얼룩으로 지저분해진 거리를 아름답게 하는 효과를 고려하면 상을 줘도 모자랄 판입니다. 법과 예술의 경계에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입니다. 특히 그는 테이트 모던 뮤지엄(Tate Modern Museum)으로 이어지는 밀레니엄 브릿지(Millenium Bridge)를 자신의 갤러리로 만들기 위해 다리 위에 버려진 껌들을 하나하나 작품으로 채색하고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 뮤지엄에 가려는 사람 누구나 건너는 다리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던 바닥을, 모두를 위한 갤러리로 꾸민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예술적입니다.

테이트 모던 뮤지엄과 세인트 폴 성당 사이를 잇는 밀레니엄 브릿지입니다. 추잉껌 아티스트 벤 윌슨은 이 다리 위를 갤러리로 꾸미려는 계획으로 작품 활동을 펼칩니다.
길바닥에 눌러붙은 추잉껌을 예술 작품으로 바꿉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던 다리의 바닥을, 모두를 위한 갤러리로 꾸민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예술적입니다.

스트리트 아트는 갤러리에 갇혀 있던 예술을 거리로 끄집어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스트리트 아트처럼 모두를 위한 예술의 힘은 보기보다 강합니다. 음침한 빈민가였던 쇼디치(Shoreditch) 지역을 트렌드를 이끄는 곳으로 탈바꿈시켰을 정도입니다. ‘카스 아트(Cass Art)’는 이러한 예술의 가치와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동네를 아티스트들로 채우기 위해 거리 곳곳에서 매장을 운영합니다.

도구의 가격을 내릴수록 올라가는 예술의 가치

“이 동네를 아티스트들로 채우자.(Let’s fill this town with artists.)”

동네를 아티스트들로 채우고 싶어하는 카스 아트는 미술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입니다. 아티스트들이 가득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카스 아트는 미술용품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이고, 문제는 어떻게 그 아이들을 자라서까지 예술가로 유지시키느냐이다.”라고 표현한 피카소의 문제의식에 대한 카스 아트 나름의 답입니다. 카스 아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도구가 비싸서 엄두도 못내는 사람들을 위해 가격 문턱을 낮추어 예술 활동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카스 아트 매장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색감의 미술용품만큼이나 가격표가 눈에 들어옵니다. 미술용품의 종류와 브랜드에 따라 10~60%까지 가격을 할인해줍니다. 가격 할인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고객들을 위해 ‘최저 가격 보장(Guaranteed lowest prices)’ 태그를 덧붙입니다. 여기에다가 최저 가격 보장이라는 표시로도 부족해 ‘카스 아트 특별 가격(Cass Art exclusive)’이라는 태그까지 붙은 제품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전통있는 물감 브랜드 윈저 앤 뉴튼(Winsor & Newton), 독일의 대표적 문구 브랜드 스테들러(Staedtler) 등과 제휴해 카스 아트 고객만을 위한 특별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입니다.

윈저 앤 뉴튼, 스테들러 등의 브랜드 제품을 카스 아트 특별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최저 가격 보장은 기본입니다.

최저 가격 보장이나 특별 가격 표시가 없다면 카스 아트에서 자체 제작한 상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체 제작한 제품들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합니다. 가격표만 놓고 보면 유명 브랜드들의 할인된 가격들과 엇비슷하지만, 제품 용량이 보통 2배 정도이기 때문에 단위 용량당 가격은 절반 수준인 셈입니다. 가격만으로도 충분히 돋보일 만한데 제품 패키지까지도 절제된 디자인을 뽐내고 있어서 고객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합니다.

아크릴 물감의 경우, 카스 아트 자체 제작 제품의 용량이 ‘달러 로우니 시스템 3’ 브랜드 제품 대비 2배 큰데 판매가는 동일합니다.
카스 아트 자체 제작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제품 패키지 디자인이 감각적이어서 구매 욕구를 자극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이미 할인된 가격에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합니다. 멤버십 카드를 온라인에 등록한 이후 첫 구매를 할 때 10%를 할인해주고, 그 다음부터는 100파운드(약 15만 원) 구매 당 10파운드(약 1만 5,000원)를 현금으로 캐시백합니다. 한 번에 100파운드 어치를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적 금액에 따른 보상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2달 내에만 이용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고객을 배려한 보상 방식입니다. 예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안 서는 초보자들에게는 부담없는 시도를 하면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일회성으로 10% 할인해주고, 예술을 꾸준히 즐기려는 동네의 아티스트들에게는 누적 금액에 따른 혜택을 제공해 예술 활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세상의 앞선 생각을 업데이트해 드릴게요!
Great! Next, complete checkout for full access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Welcome back! You've successfully signed in.
You've successfully subscribed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Success! Your account is fully activated, you now have access to all content.
Success! Your billing info has been updated.
Your billing was not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