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가 없는 칵테일 바 • 드래프트 랜드

May 27, 2021
바텐더가 없는 칵테일 바 • 드래프트 랜드

틀을 깨면 업계가 진화합니다. 타이베이에는 칵테일 바의 틀을 깨고 칵테일 씬(Scene)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 '드래프트 랜드(Draft Land)'가 있습니다. 드래프트 랜드는 칵테일 바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바텐더를 없앴습니다. 동시에 재료의 배합, 어려운 이름, 비싼 가격 등 칵테일과 고객 사이를 가로 막던 문제들까지 해소했습니다. 칵테일과 고객 간의 거리를 좁히자, 칵테일 바의 설 자리가 넓어집니다. 바텐더 없이도 칵테일 바의 비약을 이룬 드래프트 랜드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어두운 골목길의 커다란 철벽에는 간판도, 네온사인도 없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9개의 점과 점을 잇는 반듯한 선만이 그려져 있습니다. 철벽과 문 틈 사이가 만들어 낸 경계선과 여닫이 문의 손잡이만이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나타냅니다. 호기심에 용기내어 손잡이를 당기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 집니다. 숨고 싶어하는 듯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화려한 바텐딩 기술을 자랑하는 바텐더들과 삼삼오오 모여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합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는 방문한 손님들의 술 기운에 기분을 더합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칵테일 바, 타이베이의 R&D 칵테일 랩(R&D Cocktail Lab)입니다.

알고 가지 않으면 칵테일 바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R&D 칵테일 랩의 외관입니다.
숨겨둔 외부와 달리 클래식한 칵테일 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내부는 칵테일 마니아들을 위한 아지트 같습니다.

문에 그려져 있는 기호는 R&D 칵테일 랩의 로고입니다.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의 화학식(Chemical formula)인 C2H6O를 미니멀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암호를 대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금주령 시절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암호같은 간판의 의미를 알아야만 술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술집의 또 하나의 매력은 메뉴가 없다는 점입니다. 바에 들어가 자리를 안내 받으면 바텐더가 자리로 와 메뉴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술에 대한 취향을 묻습니다. 원하는 칵테일이 있다면 바로 주문을 해도 되고, 바텐더와의 대화를 통해 칵테일을 추천받기도 합니다. 실력이 뛰어난 R&D 칵테일 랩의 바텐더들은 클래식한 칵테일부터 R&D 칵테일 랩만의 오리지널 칵테일까지 약 200가지의 칵테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없는 칵테일이 없는 셈입니다.

정해진 메뉴가 없어 모든 메뉴가 가능합니다. 바텐더에게 나만의 칵테일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R&D 칵테일 랩에는 칵테일에 대한 취향이 명확한 마니아들이 모입니다. 칵테일 종류는 물론, 기주나 첨가물까지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바텐더와 나누는 심도 있는 대화는 마니아들의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R&D 칵테일 랩에서 파는 칵테일은 한 잔에 400대만달러(약 1만 6천 원)로 보통의 칵테일바 대비 비싼 편이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R&D 칵테일 랩은 칵테일에 대한 연구 개발을 통해 마니아들의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곳에서의 고민과 시도는 칵테일 고수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반면 칵테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고충을 늘려 줍니다. 기본적으로 칵테일은 맥주나 와인 대비 어려운 술인데, R&D를 통해 칵테일을 세분화시키니 R&D 칵테일 랩의 문턱은 더 높아집니다.

물론 칵테일 마니아들을 위해 칵테일을 R&D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칵테일을 즐길 수 있도록 칵테일 바 자체를 R&D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타이베이에는 칵테일에 대한 개념을 혁신하고 칵테일 바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R&D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드래프트 랜드(Draft Land)'입니다.

칵테일에 R&D가 필요한 이유

드래프트 랜드를 만든 창업자 앙구스 주(Angus Zou)는 기존과 다른 칵테일 바를 만들기 위해 2가지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제조 방식에 대한 의문입니다. 지금이 과거 대비 칵테일이 가장 비싼 시대이지만, 제조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싼 만큼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혁신을 시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요리에도 기본 조리 방식의 틀을 깨고 과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해체하는 '분자 요리'가 생겨 났듯이, 칵테일을 만드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흔들고 섞는 전통적인 바텐딩 방법에서 벗어나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바텐딩을 선보인다면 칵테일의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둘째는 고객 관점에서의 접근입니다. 그는 고객과 칵테일의 거리를 좁힐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칵테일 마니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객들은 칵테일을 주문할 때 칵테일의 맛을 알고 주문하거나 새로운 칵테일에 도전하기보다는 익숙한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에 칵테일을 제대로 다양하게 경험해 볼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칵테일 중에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칵테일에 대한 대중의 지식 수준을 감안할 때, 최근 칵테일 바들이 내세우는 로컬, 수제 등의 키워드들이 대중에게 와 닿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텐더의 관점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칵테일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쉽게 칵테일을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칵테일을 마시는 문화가 정립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드래프트 랜드 매장 입구에는 술 또는 술을 담는 그릇을 의미하는 한자 '酉'가 쓰여져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술을 파는 바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습니다.

이러한 2가지의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누구나 칵테일을 마시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비싸지 않은(Affordable), 빠른(Fast),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양질의(Quality) 칵테일을 추구하며 드래프트 랜드의 문을 엽니다. 드래프트 랜드는 아시아 최초로 '탭 칵테일(Tap cocktail)'의 개념을 도입해 칵테일을 제조하고, 칵테일을 서빙하고, 또 고객이 칵테일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혁신하고 새로운 칵테일 문화를 제안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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