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맛, 낯설게 소환해 드립니다 • 잇 달링 잇

May 28, 2021
추억의 맛, 낯설게 소환해 드립니다 • 잇 달링 잇

분명 정찬 레스토랑의 후식으로 나올 법한 고퀄의 디저트입니다. 그런데 홍콩 사람들은 이 디저트를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별안간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어릴 적 집에서, 거리에서 먹던 그 맛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홍콩 디저트 가게 '잇 달링 잇(Eat Darling Eat)'에서는 추억의 맛이 낯설게 소환됩니다. 스프를 케이크로 바꾸고, 쓰촨 후추를 아이스크림에 넣고, 미슐랭급 플레이팅도 하고, 새로운 시도가 어색하지 않을 초현실적인 공간을 꾸리는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

홍콩은 미식의 도시답게 길거리 음식도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됩니다. 물론 미슐랭 '스타'는 아닙니다. 미슐랭에서 홍콩에 대해 예외적으로 '미슐랭 스트리트 푸드 가이드(Michelin Street Food Guide)'를 출시한 것입니다. 길거리 음식은 빨리 만들어야 하고 노상이거나 협소한 매장에서 손님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하기에 정찬 요리만큼의 정교함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정찬 요리에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고유한 풍미와 개성이 있습니다.

마미 팬케이크(Mammy Pancake)의 에그 와플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며 동그란 모양을 따라 뜯어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willflyforfood
가가첨품(Kai Kai Dessert)의 검은깨죽입니다. 매일 직접 깨를 갈아 만듭니다. ⓒHong Kong Tourism Board
홉 익 타이(Hop Yik Tai)의 청펀(cheung fun)입니다. 쫄깃하고 미끌거리는 쌀떡에 피넛버터맛과 간장맛이 함께 나는 홉 익 타이 특제 소스를 버무려 내놓습니다. ⓒTime Out
와 위안(Wah Yuan)의 탕 위안(Tang Yuen)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먹기도 합니다. ⓒwillflyforfood

미슐랭 스트리트 푸드 가이드의 20여 개 음식점에는 햄버거나 인도네시아 꼬치 요리인 사타이 등 외국 음식을 파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랜 세월 홍콩인과 동고동락한 로컬 음식이 주메뉴입니다. 국수, 딤섬, 덮밥 등 식사류도 많지만 홍콩 로컬 간식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그 와플, 두부 푸딩, 탕 위안(Tang Yuan), 통 수이(Tong sui), 두부피 스프 등 다양합니다. 케이크, 쿠키 등 베이커리류가 주를 이루는 서양 디저트와는 달리 홍콩식 디저트는 보통 찌고 끓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를테면 녹두, 흑임자 등으로 소를 채운 찹쌀 경단을 삶아 먹는 탕 위엔은 밤에 간단히 먹기에도 부담이 없고 속도 따뜻해져서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홍콩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야식입니다. 달달하지만 영양까지 갖춘 건강식이 많아 부모님들이 집에서 자주 해주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 홍콩 간식에 대한 공통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거리나 허름한 노포에나 어울릴 법한 홍콩식 주전부리를 새롭게 풀어낸 곳이 있습니다. 2019년 2월 코즈웨이 베이의 쇼핑몰 패션 워크에 문을 연 잇 달링 잇(Eat Darling Eat)입니다. 홍콩 간식에 대한 추억이 없다면 그저 맛있는 디저트라고 생각하며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홍콩인들이라면 '아하, 그거!'하면서 무릎을 탁 칠 만한 메뉴들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인절미, 약과, 떡볶이, 엿 같은 전통 로컬 간식을 새롭게 선보이는 셈인데, 사람들이 알던 맛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요?

형태를 바꾼다

자색 고구마로 만들어 보랏빛을 띠는 홍콩 전통 디저트 고구마 통 수이입니다. ⓒ豆果美食
잇 달링 잇이 재해석한 고구마 통 수이입니다.

먼저 잇 달링 잇의 시그니쳐 메뉴인 고구마 통 수이(Sweet Potato Tong Sui)를 맛보겠습니다. 통 수이를 직역하자면 '달콤한 물'인데 여러 가지 재료와 설탕을 넣어 푹 고아 만드는 홍콩식 후식입니다. 고구마 통 수이는 물, 고구마, 생강, 야채, 사고(Sago)라는 전분을 한 데 넣고 끓이며, 자색 고구마를 넣으면 보라색이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발에 말간 국이 담겨 나오리라 생각했겠지만 잇 달링 잇에서 고구마 통 수이는 접시 위의 케이크입니다. 잘못 시켰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접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케이크를 고구마로 만들고 케이크 주변을 잘게 썬 고구마로 장식합니다. 그 위에 보라색 타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후 역시 보라색의 파우더를 뿌립니다. 실제 고구마 통 수이는 소스로 별도 제공해 손님이 직접 접시 위에 부어 먹게 합니다. 짙은 보라색 소스가 접시에 퍼질 때, 다들 한번쯤 먹어봤을 통 수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스노우 펑거스 통 수이입니다. ⓒDaniel Food Diary
잇 달링 잇이 재해석한 스노우 펑거스 통 수이입니다. ⓒDaniel Food Diary

파파야 통 수이의 변신도 놀랍습니다. 본래 파파야 통 수이는 젤라틴 같은 버섯인 스노우 펑거스(Snow fungus)를 파파야와 함께 졸여 만든 후식입니다. 그런데 잇 달링 잇에서 파파야 통 수이를 주문하면 마스카포네 푸딩에 스노우 펑거스, 잘게 썬 파파야, 말린 파파야 칩을 곁들인 디저트가 나옵니다. 투명한 파파야 통 수이 소스는 고구마 통 수이처럼 별도로 제공됩니다. 마스카포네 푸딩이 기존 파파야 통 수이의 하얗고 투명한 느낌을 잘 살립니다. 고급진 연한 파스텔 톤 플레이트와도 찰떡입니다.

월넛 스위트 스프입니다. ⓒGlorious Soup Recipes
잇 달링 잇은 중탕한 초콜릿 대신 홍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월넛 스위트 스프를 케이크 속에 넣었습니다. ⓒU Food

라바 케이크(Lava cake)에서는 어떻게 형태를 재해석했을까요? 라바 케이크는 퐁당 오 쇼콜라처럼 생겼는데, 초콜릿 케이크를 가르면 월넛 스위트 스프(Walnut sweet soup)가 용암처럼 흘러 나옵니다. 월넛 스위트 스프는 월넛과 쌀을 갈아 가당 연유와 우유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홍콩 간식입니다. 국물 같은 제형의 통 수이와 달리 월넛 스위트 스프는 월넛이 점도를 만드는 성질이 있어 더 되직한 편입니다. 그래서 그와 가장 어울릴 법한 디저트와 조합한 것입니다. 초콜릿 케이크의 단맛과 견과류 특유의 쌉싸름함이 균형을 이뤄 맛도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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