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행이 말을 걸어올 때

Jun 4, 2021
[에세이] 여행이 말을 걸어올 때

#합리적 의심  #일상과의 거리  #천국 같은 일터

때로는 여행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일상에 두고 온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여행은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힌트를 무심코 툭 던져줍니다. 콜라보 프로젝트를 위해 발리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여행이 말을 걸며 고민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고민입니다. 콘텐츠 기획을 하면서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선보이고자 하는데,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의 끝에는 늘 ‘이게 통할까?’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이 결과물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대부분은 마지막 질문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제 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게 당연하면서도, 가끔은 과감하지 못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이기 전까진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요.

이런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여행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느 가게의 처마 밑에 멈춰 섰는데, 한 장의 카드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The enemy of creativity is self doubt.’

갑자기 쏟아진 폭우 속에서 여행이 걸어온 말에, 어쩌면 크리에이티브를 방해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의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드의 문구를 보면서 합리적 의심은 하되, 지나친 조심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두번째는 ‘여행’에 대한 고민입니다. 트래블코드에서 하는 콘텐츠 기획의 범위를 좁혀보면 여행에 대한 기획입니다. 자연스레 ‘여행이 주는 가치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뭘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의 프롤로그에도 적었듯이, ‘일상과의 단절(Disconnect)’과 ‘평소와의 다름(Difference)’이라는 나름의 답을 찾고, 이 두가지 효용을 누리기 위해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여행이 말을 걸어와 하나의 효용이 더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취재를 하러 들른 카페에서 우연히 여행에 관한 문구를 발견한 것입니다.

‘We travel because we need to, because distance and difference are the secret tonic to creativity. When we get home, home is still the same. But something in our minds has changed. That change everything.’ - Jonah lehrer

이 문구에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일상과의 거리(Distance)’였습니다. 일상과 멀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일상과의 거리는 일상과의 단절과 다릅니다. 일상과의 단절이 일상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일상과의 거리는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일상을 객관적으로 보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의 효용 중에 하나는 일상과 거리를 둬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일상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니까요.

세번째는 ‘천국’에 대한 고민입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하는 곳을 천국과 같이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끔씩 합니다. 꿈, 열정 등의 키워드와 연결해 보면서 천국 같은 일터에 대한 답을 찾아봤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했습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깨닫고 한 켠에 밀어두었던 고민이었는데, 여행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어느 편집숍 간판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힌트가 있었습니다.

‘Lost in paradise’

여기에 천국 같은 일터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맥락적으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천국에서 길을 잃다.’라는 뜻의 평범해 보이는 간판이 해묵은 고민을 푸는 데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길을 잃어도 괜찮은 곳이라면 천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거죠. 돌이켜보면 여행을 하면서 천국 같다고 느꼈던 곳들은 길을 잃어도 괜찮았던 곳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면서 길을 잃어도 괜찮을 수 있다면 천국 같은 일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으러 온 게 아닌데, 여행이 불쑥 걸어온 말들 덕분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때로는 이런 말들을 들으러 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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