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광고판에도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시대

Jun 2, 2021
[에세이] 광고판에도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시대

#스테이플스 센터 #출장의 이유 #보이는 광고판

트래블코드에서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경우는 3가지 중 하나입니다. 콘텐츠를 취재하거나,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일로 비행기를 탑니다. 3가지 유형의 출장 모두 나름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콘텐츠 취재를 위한 출장에서는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여행 프로그램을 위한 출장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사업 추진을 위한 출장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트래블코드의 미국 법인을 설립할 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출장은 콘텐츠 취재와 여행 프로그램 운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퇴사준비생의 도쿄》, 《퇴사준비생의 런던》, 《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 등 트래블코드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콘텐츠를 글로벌 무대에 선보일 방법을 찾고 싶어서, 오랜만에 로스앤젤레스로 사업 추진을 위한 출장을 갔습니다. 미국 시장 조사에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콘텐츠 취재는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병이 도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숨어있는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할 때마다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스포츠 경기장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된 ‘스테이플스 센터’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이곳에 아무 기대 없이 저녁 먹으러 갔다가 광고를 보느라 예정에 없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스테이플스 센터 주변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듯 광고를 하고 있었고, 광고가 넘치는 만큼 사람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노출하고 있었습니다.

코너를 이용한다

스테이플스 센터에 방문한 날, 마침 공연이 있어서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테이플스 센터의 중심부가 아니라 초입에서 내려 걸어갔습니다. 조금 걸어 내려가자 스테이플스 센터 쪽 건물에 플래카드처럼 붙어 있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4월 5일에 ‘Our planet’이라는 콘텐츠를 런칭한다는 정보 전달성 플래카드인 줄 알았는데, 좀 더 걸어가니 광고가 달리 보였습니다.

플래카드가 아니라 광고판이었습니다. 광고판을 건물에 평면으로 붙이는 대신 삼각형 모양으로 입체감을 주어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입체감을 주자 건물의 모든 방향에서 광고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왼쪽에서는 텍스트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보였고, 오른쪽에서는 이미지 중심의 포스터가 보였으며, 중앙에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모두 보였습니다. 특히 스테이플스 센터 중심부로 들어가는 동선이 굽어져 있어 삼각형 모양으로 입체감을 준 광고판의 효과는 더 컸습니다. 아마 보통의 광고판처럼 건물에 평면으로 설치했다면 왼쪽과 오른쪽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광고가 잘 안보였을 것입니다. 보는 사람 관점에서 광고판을 설치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미지 중심의 광고판뿐만 아니라 동영상 광고를 할 수 있는 전광판에도 엣지가 있었습니다. 스테이플스 센터 주변의 호텔 벽면에 설치한 동영상 광고판은 건물의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까지도 활용했습니다. 측면의 광고 면적은 플래카드 정도의 크기였지만, 코너를 넘나들자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광고를 전달할 수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엣지를 살짝만 살렸을 뿐인데, 광고 효과가 2배로 살아납니다.

의미를 부여한다

스테이플스 센터 중심부에는 광장 같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광장을 둘러싼 LED 광고판에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가 현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광장의 중앙에 알록달록한 색의 설치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위치 선정과 컬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설치물의 하단에는 ‘앱솔루트(ABSOLUT)’ 보드카 브랜드가 적혀 있었고, 그 위의 중앙 부분에는 앱솔루트 보드카 이미지와 함께 ‘Planet earth’s favorite vodka’라는 메시지가 카멜레온처럼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설치물은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데다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적합한 오브제였습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을 때 스마트폰 화면에 설치물이 적당하게 들어올 수 있는 위치를 바닥에 표시해 두었습니다. 모든 게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광고 이벤트였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광장의 한복판에 세워진 광고판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주목을 받기 충분했지만, 앱솔루트 보드카는 광고 이벤트에 의미를 심어 광고의 격을 높였습니다.

발자국 모양으로 표시해둔 포토 스팟에 서면, ‘Scan and discover an ABSOLUT interactive experience’라는 메시지가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설치물에 갖다 대니 오브제가 스캔되면서 광고 이벤트를 설명하는 사이트 링크가 화면 위에 떴습니다. 광고 이벤트에 관심 갖는 사람들을 더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링크를 클릭하면 광고 이벤트의 의미에 대한 설명과 지역 커뮤니티를 도울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근처에서 앱솔루트 보드카를 즐길 수 있는 곳에 대한 소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과 연계하여 광고 이벤트를 구성하긴 했지만, 사진 찍기에 급급하지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링크를 클릭해 광고 이벤트를 더 깊게 알아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후 몰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설치물 뒤편에도 광고 이벤트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쓰레기의 65%가 매립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재활용을 장려하고자, 아티스트 ‘댄 토빈 스미스(Dan Tobin Smith)’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버려진 1.03톤의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사람들이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재활용 쓰레기통을 비치해두었습니다.

‘바다에 물방울 떨어뜨리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캠페인이 쓰레기를 줄이는 자극제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 이벤트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의미를 담아 희망을 전하려는 시도에 앱솔루트 보드카의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스럽게 숙성됩니다.

과정을 드러낸다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판 앞에서 정신을 빼앗겼다가, 스테이플스 센터에 온 목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할 곳을  찾기 위해 스테이플스 센터 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중앙의 광장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가자 식당 말고 또 다른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스테이플스 센터 건너편 쪽의 건물 벽면에 애플이 광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애플 광고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서 특별할 게 없었지만, 광고의 위치와 방식이 특이했습니다. 건물 벽면에 광고판이나 LED 전광판을 걸어두는 게 아니라 건물 벽면 자체가 광고판이었습니다. 건물 벽면에 직접 그린, 아날로그적인 벽화가 광고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스트리트 아트가 있어야 할 법한 곳에 아트 대신 광고가 자리잡으니 어색한 듯 어울리는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예술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광고를 노출하는 방법이지만 광고판이나 전광판을 활용한 광고 대비 비효율적인 방식인 건 분명합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림이 완성되면 광고를 바꾸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에게 작업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벽화를 그려 광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고판이나 전광판에 이미지를 갈아 끼는 것과 달리 벽면에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아티스트들이 건물 벽을 캔버스 삼아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스테이플스 센터 건너편에서 발견한 애플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3개의 영역 중에 하나만 그림이 완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리는 과정에 있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라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아티스트가 거대한 벽면에 매달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을 것입니다.

완성된 광고는 거리의 예술로 승화되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작업 중인 광고는 거리의 볼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니, 광고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기대 없이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 뜻밖의 시간을 보낸 덕분에 저녁 식사의 포만감이 더 커졌습니다. 스테이플스 센터를 한참 돌다가 결국, 별다른 고민 없이 햄버거 라지 세트를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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