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의 미래를 찾는 실험 • 메리상회

Jul 1, 2021
오프라인의 미래를 찾는 실험 • 메리상회

옛날옛적의 일입니다. 미국 어느 지역에 허허벌판의 평야가 있었습니다. 볼 것이라곤 잡초밖에 없는 이곳에 특정 시즌이 되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평야로 버팔로 무리가 대이동을 하는 것이 장관처럼 펼쳐졌기 때문이죠.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볼만한 광경이라고 손꼽힐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버팔로가 떼지어 평야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버팔로가 대이동하는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웠죠. 지금이야 인공위성 등으로 탐지를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런 과학 기술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젊은이가 솔깃한 공고를 냈습니다.

1921년 7월 1일 오후 3시
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버팔로 무리의 대이동!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아니면 2달러 지급

젊은이의 호언장담에 그가 지정한 날짜가 되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 갈 이유가 없는 이벤트였습니다. 젊은이의 예언처럼 버팔로 무리가 지나가면 장관을 볼 수 있어 좋고, 만약 그의 말이 틀렸다면 2달러를 벌 수 있어서죠. 밑져도 이득입니다. 드디어 3시가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도 땅이 울리거나 흙먼지가 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오차가 있을 수 있어 사람들은 1시간 가량 더 기다렸으나 버팔로 무리는 커녕 파리떼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약속대로 2달러를 돌려 받았기 때문이죠.

그곳에 온 사람들은 허탕을 친 게 아니라 한탕을 챙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젊은이는 파산했을까요? 아닙니다. 버팔로의 대이동을 보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는 강에서 뗏목을 운영하면서 4달러를 받았던 것입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 2달러씩 줬으니 손해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마다 2달러씩 벌어들인 셈입니다.

뗏목 장수의 우화같은 이야기처럼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듯한데 알고보면 이익인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스스로는 실리를 챙기며 서로 윈윈하는 고수의 전략이죠. 뗏목 장수같은 고수가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 상상 속 이야기에서만 존재하란 법은 없습니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죠. 바로 을지로에 위치한 '메리상회'입니다. 이곳에 가면 버팔로 무리를 구경하러 갔던 사람들처럼 2달러 정도의 이득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간이 아니라 기분을 팝니다

메리상회를 한마디로 혹은 기존의 방식으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업종으로 보자면 편의점, 분식점, 카페, 비스트로가 혼합되어 있는 곳이죠. 그렇다고 전형적인 편의점, 분식점, 카페, 비스트로를 한 공간에 모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각각에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편의점은 힙함을 더해 '감성 편의점'으로, 분식점은 급을 올려 '프리미엄 분식점'으로, 카페는 가격파괴를 추구하며 '초저가 디저트 카페'로, 비스트로는 가벼움에 방점을 둬서 '잔술 비스트로'로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를 혼합해 놓으니 정체성이 흐려집니다. 보통은 여러 업종이 한 곳에 모여 있을 경우 복합문화공간으로 부를 수도 있는데,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부르기도 애매합니다.

이처럼 메리상회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컨셉을 잡을 줄 몰라서 이것저것 섞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경계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온라인 커머스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이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고, 이미 자리잡은 오프라인 비즈니스 업종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정체를 내려 놓고 감성 편의점, 프리미엄 분식점, 초저가 디저트 카페, 잔술 비스트로를 더해 놓으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고객 경험이 새로워집니다. 메리상회는 정체가 불분명한 대신 가야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이곳에선 지갑과 마음에 여유와 위트가 생기기 때문이죠.

우선 가격표가 착합니다. 아메리카노 2,500원, 호텔 오렌지에이드 1,900원 등 보통의 카페에서는 보기 어려운 가격대입니다. 술은 가격 차이가 더 현저합니다. 잔술 화이트와인 2,500원, 호텔빠 위스키 테이스팅 샘플러 12,900원 등 일반 비스트로에서는 구경해본 적이 없는 가격대죠. 분식도 가격 경쟁력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꽃게로제 요괴라면 9,900원, 신사동 참문어 요괴냉초면 9,900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죠. 라면으로 생각하면 비싼듯 보이지만 토핑으로 들어가는 푸짐한 꽃게, 문어 등을 고려하면 싼 편입니다. 토핑이 중요하지 않을 경우 셀프 레스토랑을 이용하면 2,000원에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도 있죠. F&B 코너에서 무엇을 먹건 보통의 전문 매장 대비 2달러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F&B 코너와 달리 감성 편의점 코너에 있는 제품의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편의점과 가격대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죠. 하지만 제품에 대한 접근이 180도 다릅니다. 보통의 편의점이 단위 면적에 최대한 많은 제품 종수를 진열하려고 하는 반면, 메리상회의 감성 편의점 코너는 제품 종수보다 제품 큐레이션에 집중합니다. 같은 제품군이라도 외국에서 유명하거나, 브랜드가 힙하거나,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 제품들을 소개하죠. 또한 제품에 대한 설명에도 신경을 씁니다. 위트를 담거나, 맥락을 알려주거나, 특별한 점을 짚어주는 식이죠. 그래서 감성 편의점 코너를 둘러보다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트렌디한 제품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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