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새긴 립스틱, 중국 MZ의 마음을 물들이다 • 화시즈

Dec 9, 2021
전통을 새긴 립스틱, 중국 MZ의 마음을 물들이다 • 화시즈

중국 후한 시대 말, 장창이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조정으로 출근하기 전 아내의 눈썹을 손수 그려주었습니다. 아내가 어렸을 적 장창과 놀다가 눈썹 부근에 상처를 입어 눈썹의 일부가 자라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죠. 그가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그려준 눈썹 모양은 매우 아름다워 동네방네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이후 눈썹을 그려준다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창이 눈썹을 그린다는 뜻의 장창화미(张敞画眉)는 부부의 금실이 좋다는 것을 표현한 사자성어가 되었죠.  -《汉书·张敞传》

사자성어 속에 갇혀 있던 애틋한 이야기가 2천년만에 부활했습니다. 어느 화장품 회사가 장창화미를 모티브로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사자성어와 화장품은 서로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이 회사는 둘 사이에서 눈썹을 그려 사랑을 표현한다는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2018년 중국판 발렌타인데이인 철석(8월 14일)을 맞아, 이 고사를 인용하며 칠석을 ‘연인을 위해 눈썹을 그려주는 날’로 지정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처럼 중국의 칠석엔 연인들의 눈썹을 그려준다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죠. 물론 눈썹을 직접 그려준다기보단 아이브로우를 선물하는 문화를 제안하는 겁니다.

한 번의 마케팅 캠페인으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매년 칠석 즈음에 동일한 스토리로 칠석 마케팅 캠페인을 다양한 형태로 펼쳐냅니다. 그러다 2021년에는 급기야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합니다. 글로만 보았던 이야기를 시각화하자 반응이 폭발했습니다. 4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은 800만 뷰를 기록했고 장창화미란 사자성어는 공개 이후 약 1개월간 주요 SNS 내 인기 검색어를 기록할 정도였죠.

2021 화시즈 칠석 마케팅 캠페인 애니메이션 ©화시즈

반응은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칠석날 아이브로우를 선물하는 문화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어쩌면 매년 마케팅 캠페인을 반복한다해도 문화로 자리잡긴 어려울 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이 화장품 회사의 시도 자체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서구의 문화에 밀려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졌던 동양의 고전 콘텐츠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화장품 회사가 뜬금 없이 고전의 스토리를 들고 왔다면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태생부터 중국 전통 문화와 원료를 활용해 트렌드에 민감한 화장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브랜드이기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죠. 이처럼 고전의 미학에 화장품 최신 제조 기술을 결합해 동양의 미를 세계에 알리려는 이 브랜드는 중국 2030 세대의 잇템으로 불리는 ‘화시즈(花西子)’입니다.

화장품에 담아낸 한 폭의 전통 예술

빨간 립스틱의 둥근 표면을 따라 봉황이 그려져 있고, 아이섀도우 팔레트엔 중국 4대 미녀를 비롯해 역사 속 인물 이야기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화시즈는 전통 양·음각 기술을 활용해 봉황이나 꽃, 유명 화백의 그림 등 중국 전통 문화 콘텐츠를 화장품에 구현했습니다. 보통 브랜드 로고나 심플한 음각 정도만 남기는 해외 유명 브랜드와 대조적으로 화시즈의 제품들은 정교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죠. 화장품 위의 예술이 닳아 없어지는 게 아쉬워 오히려 바르기 망설여질 정도입니다.

©화시즈
©화시즈

단순히 외관만 신경쓴 게 아닙니다. 매 라인이 출시될 때마다 중국 고전 문학 컨셉을 제품 원료부터 내외관 디자인, 색상 이름 등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며 한 폭의 시를 화장품 세트에 담아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서호 10경 (서호 西湖:중국의 대표적인 호수 중 하나)' 라인업을 출시할 때는 전체 브랜드 컨셉을 서호 10경과 관련된 고대 한시를 모티브로 합니다. 화장품 외관은 비 오는 날 호수를 그린 화백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꾸몄습니다. 색조 팔레트는 호수 근처의 꽃과 약초 등을 활용해 만든 색상으로 구성해 시의 심상이 떠오르는 표현들로 각각 이름을 붙였습니다. 비 오는 날 서호의 풍경을 노래한 한시를 인용한 시리즈 '서자원대반(西子远黛盘)'의 경우, 춤추는 바람 속 반딧불이 (펄 그레이 화이트), 맑은 물 속 아른거리는 돌 이끼 (펄 라이트 에메랄드), 비 온 후 무수한 별(펄 딥 에메랄드) 등으로 색을 표현하는 거죠.

고대 한시를 모티프로 한 ‘서호 10경’ 라인업 ©화시즈
©화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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