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을 권하는 미식 공간 • 이머시브 레스토랑 3곳

Jan 20, 2022
과몰입을 권하는 미식 공간 • 이머시브 레스토랑 3곳

이과생이 ‘궁극의 맛’을 위해 연 레스토랑- Ultra violet

오후 6시 30분. 상하이 와이탄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레스토랑에서 웰컴 샴페인 한 잔을 건네주고 자리를 안내해 줍니다. 그런데 막상 식사를 하기 위한 메뉴판은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손님들도 메뉴판을 찾지 않죠. 마치 이곳에 식사 하러 온 게 아니라는 듯 샴페인을 마실 뿐입니다.

오후 7시. 말끔하게 차려입은 2명의 웨이터가 모인 사람들의 수를 확인한 후 어딘가로 안내합니다. 레스토랑 바깥에 주차된 허름한 봉고차에 10명이 모두 올라탑니다. 창을 어둡게 칠해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눈에 안대를 씌웠다면 누가 봐도 영락없는 납치 당하는 모양새입니다. (오..징어게임?) 지금 향하는 곳에 대한 정확한 주소는 관계자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위치를 물으면 “상하이 어딘가(Somewhere in Shanghai)”라고 대답할 뿐이죠.

약 10분 후 차가 멈추고 한 명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도착한 곳은 폐쇄된 공장 지대의 한 허름한 창고 건물입니다.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합니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고, 푸른 레이저 빔만 어렴풋이 내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하 벙커를 연상하게 하는 이곳은 흔한 장식과 창문 하나 없이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밀실입니다. 긴 테이블이 방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10개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죠.

스산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Welcome home!)” 홀로그램 영상과 함께 첫 번째 음식이 앞에 놓입니다.

©Scott Wright of Limelight Studio

세계 최초의 아방가르드 레스토랑이자 미디어 아트 몰입형 레스토랑인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의 도입부입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착시를 활용한 홀로그램이 벽을 가득 메우고 *프로젝션 맵핑(전용 스크린이 아닌 무대 세트·건축물 등 입체물 표면에 프로젝터(Projector)로 영상을 투사하는 기법) 기술로 테이블에 생동감 있는 3D 영상을 투사합니다. 새하얀 벽과 천장이 도화지 역할을 하며 매 코스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 음식과 관련된 스토리 영상으로 바뀌죠.

가령, 먼 대양에서 공수해 온 참치로 만든 전채 요리가 나올 땐 망망한 대해가 사방으로 펼쳐지고, 파도가 세차게 치기 시작합니다. 문득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이 다랑어를 잡을 때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바다 한복판에 있는 듯하니 테이블 위에 놓인 참치 요리가 특별하게 보이죠. 두 개의 다른 시각 정보가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입맛을 돋게 한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창업자 ‘폴 페레(Paul Pairet)’로부터 나왔죠. 그는 음식을 단순히 ‘맛’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1차원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맛 이외의 모든 감각을 ‘심리적 미각(Psycho-taste)’이라 설명하죠. 일찍이 과학도를 꿈꿨던 그는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궁극의 맛’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음식 맛 외에 다른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와 음식에 대한 감정이라고 가설을 내린 그는 과학 실험처럼 이 변수들을 최대한 통제하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이 심리적 미각을 추구하기 위해 울트라 바이올렛을 오픈한 것입니다.

식사하는 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아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하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초 단위로 정확한 시간에 맞춰 코스 요리를 서빙합니다. 영상, 음향, 조향(調香) 장치를 통해 맛에 영향을 주는 모든 감각을 동일하게 통제합니다. 음식은 분자 단위로 쪼개 변형하고 재조합하는 분자 요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곤 폴이 세계 여행을 하면서 영감을 받았던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실험실에서 재구성했습니다. (울트라 바이올렛에선 주방을 랩실이라도도 부릅니다.) 스시, 라비올리, 피시앤칩스 등 분명 이름은 익숙한데 폴이 내놓는 그것들은 먹어보지 않고선 좀처럼 예측 불가능한 요리입니다.

©Ultra violet

폴은 음식부터 환경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 합니다. 개개인의 무의식적인 감정이 공감각적 심상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최상의 맛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앞서 참치를 먹을 때 나왔던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망망대해의 장면으로부터 누군가는 ‘갓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신선함’을 연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언젠가 읽은 ‘노인과 바다’를 떠올립니다. 이미 요리가 된 참치의 맛에는 변화가 없지만, 음식을 최종적으로 먹는 사람의 감정이 결국 음식과 가상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미각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울트라 바이올렛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아시아에서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원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은 예약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 울트라 바이올렛은 사정이 더 심합니다. 하루에 딱 1번, 총 10명의 손님만 받기 때문입니다. 이마저도 긴 하나의 테이블에 합석하는 방식입니다. 10명의 손님을 위해 배치되는 서버는 약 25명. 약 2명의 서버가 1명을 담당하며 한 편의 작품과 같은 요리의 서사가 매끄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코스는 1인당 약 4,000~6,000위안 (75만 원~110만 원)으로 총 20개 요리와 페어링한 와인이 서빙됩니다. 식사를 시작하고 마치기까지 중간 인터미션을 포함해 약 4시간 소요되죠. 최소 3개월 전부터 예약 캘린더가 오픈되는데 상하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예약을 하는 터라 순식간에 마감됩니다. 여행 일정에 맞춰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예약 성공한 날짜에 맞춰 상하이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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