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에도 취향이 필요한가요? • 장인간장

May 25, 2021
간장에도 취향이 필요한가요? • 장인간장

'장인 간장'은 일본 각지의 장인이 만든 80여 개의 간장을 모아둔 간장 편집숍입니다. 단순히 모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장 계란밥, 스시, 데리야끼 등 어울리는 요리를 페어링해 추천합니다. 또한 다양한 간장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50ml, 100ml 등 소용량으로 판매하고, 입문용과 선물용 세트도 마련해 고객이 선택장애에 빠지지 않도록 돕습니다. 덕분에 무차별하다고 여겼던 간장이 취향껏 소비하는 고관여 제품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스크림에 간장을 뿌려먹으면 어떤 맛일까요? 오타쿠들이 실험정신을 가지고 만든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을 시도한 건 고급 아이스크림의 대명사 '하겐다즈'입니다. 하겐다즈는 간장맛 설탕 점성소스에 호두맛이 나는 '미타라시 호두' 아이스크림을 2015년 2월에 겨울 시즌 한정판으로 출시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발매 2일만에 동이나 그 다음 겨울 시즌인 12월에 앙코르 한정판매를 진행할 정도였습니다.

하겐다즈가 일시적으로 자극적인 입소문을 만들기 위해서 간장맛을 택한 것은 아닙니다. 매년 겨울 세븐일레븐 편의점과 함께 출시하는 '자포네(Japonais)' 시리즈의 6번째 에디션으로 간장맛 아이스크림을 내놓은 것입니다. 자포네 시리즈는 일본의 맛을 아이스크림에 조화시킨다는 컨셉으로 2010년부터 시작했으며, 콩가루, 팥 등 전통적인 맛을 아이스크림에 접목시키며 매년 인기리에 판매되는 한정판 아이스크림입니다.

하겐다즈가 자포네 시리즈로 간장맛 아이스크림을 선보인 건, 간장이 일본을 대표하는 맛 중 하나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맛을 지키려는 이러한 노력은 전통의 맛이 정통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인 식습관의 서구화로 인해 간장을 비롯한 전통장류 시장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이 줄어들 때 더 고전하는 건 중소업체들입니다. 큰기업이야 자본력과 유통력이 있기 때문에 버틸 힘이 있어도, 간장 제조를 전업으로 하는 장인들은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간장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패턴도 중소업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간장은 요리를 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을만큼 중요하지만 고객들이 맛을 비교해가며 신중하게 고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브랜드와 영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 역시 간장 장인들에게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간장 장인들의 한숨이 간장과 함께 숙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어깨를 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장인을 빛내는 상인

간장 장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스로 틀을 깨고 나오긴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간장을 만드는데는 고집이 있었지만, 그만큼 유연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양조장과의 교류를 불편해할 정도로 닫혀있었기 때문에 중소업체들간의 판매 연합이라던지, 협업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라던지, 관광 상품과 연계 등으로의 사업 확장 등을 시도하며 활로를 찾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상인이 아니라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간장 제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간장 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건, 제조회사 영업사원 출신의 상인인 '타카하시 만타로' 입니다. 그는 간장에 대한 전문성은 전무했지만 전통 산업과 지역 산업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각지를 여행하며 만난 간장 장인들의 한숨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통 산업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즈음, 인터넷 쇼핑을 낯설어하던 어머니가 첫번째로 온라인 주문한 품목이 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가 인터넷 쇼핑을 시작하며 첫번째로 주문할만큼 일상적인 제품이라는 점과 인터넷 쇼핑 초보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할만큼 무차별적 제품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간장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합니다.

간장에 대한 공부와 시장 조사를 한 후 그는 '장인 간장'이라는 간장 편집숍을 만들었습니다. 간장을 직접 만들지는 않고, 전국 34개의 양조장에서 장인들이 만든 80종이 넘는 간장을 판매합니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의 조미료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간장을 취향의 영역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간장이 간장이지'라는 편견을 깨뜨리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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