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시민들이 가스공장 벽을 오르는 이유 • 클래테르베르켓

Jun 2, 2021
스톡홀름 시민들이 가스공장 벽을 오르는 이유 • 클래테르베르켓

스톡홀름에서는 130년 된 가스공장에서 실내 클라이밍을 할 수 있습니다. 둔탁한 공장 설비와 스웨덴 특유의 감각으로 디자인한 암벽 간의 대비가 18m 높이만큼 아찔합니다. 그렇다고 공장 설비를 관상용으로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옷걸이, 바 테이블, 손잡이 등 새 역할을 부여해 달라진 쓰임새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스웨덴 최대 실내 암벽등반장 클래테르베르켓(Klätterverket)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옛 공간을 살려냈는지 확인해 보세요.

2003년의 어느 날 스웨덴 남부 발틱해의 한 항구 도시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날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 말뫼(Malmö)의 상징이었던 코쿰스(Kockums)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해체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중공업 강국이었던 스웨덴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조선업에서의 경쟁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이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팔렸습니다. 이 크레인이 해체되어 울산으로 떠나던 날 현지 방송에서는 장송곡이 흘러나왔으며, 수많은 말뫼의 시민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말뫼의 눈물'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때 말뫼의 자랑이었던 조선소 부지가 쇠락해버린 도시를 상징하는 장소로 남게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대형 크레인이 해체된 지 약 17년이 지난 지금, 말뫼의 폐조선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말뫼는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 중 하나입니다. 말뫼 대학의 설립을 계기로 스웨덴 중앙 정부와 지역 단체, 기업들이 합심하여 도시의 변신을 이끌어낸 결과입니다. 이제 하루 평균 7개의 스타트업이 이곳에서 창업하고 있으며, 말뫼는 더이상 중공업이 아닌 첨단 IT, 바이오 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구심점이 된 시설이 바로 황량하게 버려졌던 조선소였습니다. 폐조선소 단지는 이제 말뫼 대학과 스타트업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되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젊고 활기찬 공간으로 부활했습니다.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해체될 때 흘렸던 '말뫼의 눈물'은 도시의 부활을 지켜보는 시민의 '기쁨의 눈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처럼 도시의 재생에 있어 해당 지역의 상징성을 지닌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뫼에서와 같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도 폐공장 부지를 기반으로 유럽 최대의 친환경 지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진행중입니다. 바로 스톡홀름의 가스공장 가스베르켓(Gasverket) 단지 재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친환경 신도시 개발 지구 내에 위치한 스톡홀름의 가스공장 단지 가스베르켓. 가스공장의 주요 건물들은 고풍스러운 내외관을 보존하며 신규 개발 지구의 핵심 시설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Gasverket

스톡홀름 가스베르켓은 1890년에 건설되어 2011년 가동이 중단될 때까지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가스를 저장, 생산 및 공급하는 공장 시설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스웨덴 왕가에서 소유한 스톡홀름 도심의 대규모 녹지 내 위치하여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빠른 성장에 따른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최근 이 녹지의 일부 지역에도 마침내 신규 단지 개발이 허용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도시 중심부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2030년까지 이곳은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친환경 스마트 단지로 거듭날 예정이며, 이 개발 지구의 중앙에 위치한 가스공장 단지는 향후 5년간 호텔, 리테일, 스포츠 시설들로 전환됩니다. 이 공장의 주요 건물들은 당시 스웨덴 최고의 건축가였던 페르디난드 보베리(Ferdinand Boberg)가 설계한 역사적인 건축물인만큼, 공장 내 주요 건물의 내외관은 보존되어 개발됩니다.

가스베르켓 공장 부지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시설은 2019년 9월 오픈한 실내 암벽등반장, 클래테르베르켓(Klätterverket)입니다. 오래된 공장 건물 내부에 존재하는 암벽등반장 자체도 독특하지만, 여기에 스웨덴 특유의 공간 구성 철학과 감성이 더해져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더욱 이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하고, 창의적인 공간 구성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 속에 공존하고 어우러집니다. 또한, 스톡홀름 시민들의 생활과 니즈를 섬세하게 반영하여 이곳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력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단지 과거의 흔적을 보존한 것을 넘어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웨덴의 공간 재생 기술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곳 클래테르베르켓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 극적인 대비가 공간을 살린다

암벽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공장 설비들은 이 공간에 담겨있는 역사적 정체성을 상기해줍니다. 또한 멋지게 구부러진 가스 파이프들은 암벽을 오르는 이들에게 색다른 공간감을 전해줍니다.

클래테르베르켓 건물의 1층의 복도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면 작은 창문 너머로 커다란 오픈 공간이 드러납니다. 18m의 높이로 수직으로 뻗은 스웨덴 최대의 실내 클라이밍장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리게 됩니다. 사방을 둘러싼 아찔한 암벽들 사이로 보이는 대형 가스 파이프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이 방문객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줄 하나에 의지해 아찔한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오래된 공장 설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합쳐져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등반 벽과 무채색에 거친 질감인 기존 공장 설비의 강렬한 대비는 방문객들에게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시설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다양한 대비들은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해줍니다. 무엇보다 화사한 색채의 인공암벽 시설과 오래된 공장 설비가 만드는 강렬한 대비가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스포츠 시설이라기보단 마치 아트 갤러리나 박물관의 체험 학습실에 와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하얀 암벽에 박혀 있는 알록달록한 인공 손잡이(홀드, Hold)는 다소 둔탁한 느낌의 공장 건물을 보다 활기찬 공간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이외에도 좁은 복도를 지나서 등장하는 거대한 오픈 공간, 수직으로 치솟은 암벽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파이프 등 극적인 대비들이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창의적인 공간 배치를 통해 만들어낸 효과입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다소 단조로울 수도 있는 오픈된 공간을 지루할 틈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듭니다.

스포츠 시설이라기보다는 아트갤러리의 느낌이 드는 독립된 클라이밍 공간입니다. 시설 곳곳에서는 스웨덴 특유의 공간 구성 및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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