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매장으로 100개국에 단골을 둔 패션 편집숍 • LN-CC

May 26, 2021
하나의 매장으로 100개국에 단골을 둔 패션 편집숍 • LN-CC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이 섞여 있습니다.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매장인지 클럽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편집의 기준이 없어 보여도, 알고보면 정체성이 뚜렷합니다. 패션 피플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있는 곳입니다.

디자이너는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루이 비통(Louis Vuitton), 프랑수아 고야드(François Goyard), 잔느 랑방(Jeanne Lanvin) 등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루이 비통, 고야드, 랑방이 브랜드로 남아 여전히 이름값을 합니다.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제대로 이름값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2010년에 자살로 안타깝게 생을 마쳤지만,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은 모회사 케링(Kering)이 캐시카우로 내세울 만큼 건재합니다. 그가 구축한 스타일이 공고한 덕분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그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첫째, 고급 패션과 하위문화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고급 패션과 하위문화 패션은 계급사회와 함께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경계를 넘나드는 재밌는 실험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렉산더 맥퀸이 이러한 전환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입니다. 해골 등 노동계급이 만든 펑크 문화의 상징을 고급 패션으로 소화해 내면서 기존 패션이 가지고 있던 틀을 깬 것입니다.

둘째, 패션쇼를 옷을 선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패션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쇼는 옷, 무대, 모델, 음악, 퍼포먼스 등을 통합한 종합 예술 작품으로, 그의 쇼에서 옷만을 분리해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옷을 디자인할 때 영감을 준 사건, 소재, 주제가 있다면 쇼의 전체 컨셉과 내러티브로 구현합니다. 예를 들어 1999년 S/S 컬렉션 ‘No.13’에서는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이 하얀 드레스에 페인트를 뿌리는 무대 연출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 나아가 대량 생산되는 몰개성한 패션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1994년 F/W 컬렉션에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고산 지방에서 영국 병사들이 스코틀랜드 여성들을 해코지한 사건을 주제로 잔인한 역사의 한 장면을 끄집어냅니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님에도 찢어진 옷, 휘청이는 워킹, 야성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만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매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 하이라이트입니다. ⓒDazed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듯, 2011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열린 알렉산더 맥퀸 추모 패션쇼 ‘새비지 뷰티(Savage Beauty)’는 박물관 역사 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이 쇼는 이듬해 런던 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어워드의 패션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어워드는 알렉산더 맥퀸뿐 아니라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셀린느(Celine),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등 패션계 명사들의 각축장이었는데, 이 가운데 알렉산더 맥퀸 못지 않은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매장이 있습니다. 단 하나의 매장으로 100여 개국에 고객을 두고, 매출의 80%가 영국 밖에서 나는 전 세계 패션피플들의 성지 ‘LN-CC’입니다.

#1. 하나여도 괜찮아, 존재감이 충분하다면

이스트 런던의 달스턴(Dalston)은 런던의 떠오르는 힙플레이스입니다. 역사적으로 터키, 자메이카, 베트남, 폴란드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리잡았던 지역이라 문화가 다양하고, 원래 우범 지역이었지만 임대료가 낮은 덕에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유입되며 지금의 힙스터 동네가 되었습니다. 주차장, 전쟁 때 폭격 맞은 폐건물, 선적 컨테이너 등 달스턴의 매장들은 위치 선정에서도 평범함을 거부합니다. 힙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LN-CC 역시 지하 벙커 같던 낡은 복싱 체육관을 개조해 만들었습니다. 간판도 없고 이렇다 할 매장 입구도 없이 철문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00% 예약제였다고 하니 비밀 접선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여기가 맞나 긴가민가하며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잠시 후 한 눈에 봐도 스타일리쉬한 스태프가 마중 나옵니다.

간판도 없고 패션숍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의 LN-CC 입구가 스피크이지 바를 연상케 합니다. 클릭해서 이미지를 올려주세요

나뭇가지 덩굴로 우거진 어둠의 통로를 지나면 지금까지의 의구심을 날려버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SF 영화 세트장에 온 듯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팔각형 터널이 한 가운데 자리합니다. 이 터널을 중심으로 7개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4개의 제품 룸, 라이브러리, 프라이빗 클럽, 바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어 여러 개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여기에 LN-CC가 직접 리믹스한 앰비언트 음악(Ambient music)이 고요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LN-CC는 이 매장 음악을 음원 공유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올리는데, 이 계정을 8,000여 명이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스토어 믹스 037 - 보이지 않는 도시(Store Mix 037 - Invisible City)’ 트랙은 재생횟수가 2만 4,000회가 넘을 정도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매장 인테리어가 사람바깥 세계를 잊고 이 공간에 몰입하게 합니다. ⓒLN-CC
양쪽에 2개의 거울을 맞대어 서로 반사해 비추게 함으로써 끝없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스니커즈 홀을 완성했습니다.
패션 매장과 같은 듯 또 다른 느낌의 프라이빗 바를 두어 다채로운 느낌을 줍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세상의 앞선 생각을 업데이트해 드릴게요!
Great! Next, complete checkout for full access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Welcome back! You've successfully signed in.
You've successfully subscribed to 퇴사준비생의 여행.
Success! Your account is fully activated, you now have access to all content.
Success! Your billing info has been updated.
Your billing was not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