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엔 일시정지 버튼이 있나요? • 밑미홈

Jul 22, 2021
당신의 시간엔 일시정지 버튼이 있나요? • 밑미홈

이제 극장의 시대는 저무는 걸까요? 영화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파르게 성장하며 극장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어서죠. 영화 산업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인 만큼 영화인들의 축제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이 고민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나 봅니다. ‘기생충’으로 2020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 심포지엄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에게 사회자가 이렇게 물은 걸 보면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뾰족한 질문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미 ‘옥자’를 통해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개봉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죠. 이에 봉준호 감독은 마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놓았습니다.

"영화관은 유일하게 보는 사람이 스탑버튼(일시정지)를 누를 수 없는 공간입니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2시간에 달하는 한 덩어리의 리듬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소는 영화관이 유일하죠."

봉준호 감독의 답변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모두의 경험을 소환해 공감을 불러일으킨 답변이자, 극장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이었으니까요. 그의 말대로라면 극장은 영화를 파는 곳이 아니라,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경험을 파는 곳’입니다. 스크린의 크기가 크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등의 특징은 극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 영화관의 본질은 아닌 거죠.

이처럼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면 극장이 존재할 이유는 여전합니다. 결국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업의 '본질'을 정의하고 '무엇을 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죠.

극장은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의 통찰과 맥을 같이 하는 공간이 성수동에 있습니다. 바로 ‘밑미홈’입니다. 이곳의 2층은 점심과 저녁의 담당 셰프가 다른 식당, 3층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상담실, 리추얼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샵, 리추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방, 4층은 요가를 할 수 있는 스튜디오, 5층은 멍 때릴 수 있는 옥상으로 구성되어 있죠.

2층부터 5층까지 층마다 다른 컨셉의 밑미홈

겉으로 보기엔 이 공간을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 공간이 혼재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분명합니다.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는 동안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죠.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팝니다

밑미홈에서는 음식, 제품, 요가 클래스, 심리상담 등 여러가지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진짜로 파는 것은 ‘시간’입니다. 그것도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팝니다. 내가 스스로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는데,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구매한다는 말이 낯설게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건 요원한 일입니다. 회사 일에 치여, 사회적 관계에 엮여, SNS의 푸시에 밀려 자기만의 시간이 온데간데 없어지기 때문이죠. 이렇게 시간에 쫓기고 에너지가 빨려 나갑니다.

이 때 필요한 게 ‘리추얼’입니다. 어떤 행위를 의식적으로 반복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거죠. 그래서 밑미홈 3층에 있는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는 리추얼에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형태적으로는 제품이지만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밑미홈에서 팔고 싶은 건 제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잎차에는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연필에는 ‘내 맘 속 이야기를 꾹꾹 눌러 써보는 시간’이라고 적어 두는 식입니다. 드릴을 사는 사람이 드릴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드릴로 뚫을 수 있는 구멍에 돈을 지불하듯이, 밑미홈의 제품 설명도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제품이 가져다주는 효용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그 효용은 마치 깔때기를 댄 듯 ‘시간’으로 모이죠.

또한 3층에 있는 ‘리추얼의 방’에선 리추얼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리추얼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서 샘플을 보여주는 셈이죠. 밑미의 리추얼 메이커이자 인플루언서들이 실제로 각자의 시간을 어떤 리추얼을 하면서 보내는지를 엿볼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검소하게 정돈된 방처럼 느껴지지만, 그 공간에 놓인 소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리추얼 메이커의 시간이 그려집니다. 동시에 ‘나의 리추얼은 무엇인지’, ‘나에겐 나의 시간이 있는지’ 등 스스로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죠.

온라인에서 판매중인 리추얼 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

그뿐 아닙니다. 이 곳에서는 말 그대로 시간이라는 아이템을 팝니다. 시간을 사면 어떻게 되냐고요? 물론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명이 늘어나는 등의 마법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이 담긴 질문카드를 주죠. 여기에다가 밑미홈의 하이라이트인 5층의 ‘심심한 옥상’을 사용할 수 있는 쿠폰도 함께요. 나에 대해 생각할 거리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판매 중인 시간
시간을 파는 상점의 전체 풍경

‘심심한 옥상’은 성수동이 내려다보이는 밑미홈의 5층 옥상입니다. 이 곳에서는 편한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음료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질문카드에 답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3층의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구입한 시간이 5층의 ‘심심한 옥상’으로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인 셈이죠. 바로 이 점이 밑미홈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여느 카페의 야외 테라스와 같은 옥상의 공간을 내 시간을 구입해 나에게 선물한다는 컨셉을 입혀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시간을 산다는 컨셉과 질문카드 같은 장치 덕분에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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