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 • 샤오르즈

May 27, 2021
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 • 샤오르즈

타이베이의 '샤오르즈(小日子)'는 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잡지의 내용을 바꾼 것도, 잡지의 디자인을 혁신한 것도 아닙니다. 대신 잡지에 머무르지 않고, 매장을 열었습니다. 물론 매장을 연다고 해서 잡지가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샤오르즈는 잡지를 닮은 매장을 열어 잡지를 브랜딩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잡지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로 머무를 수 있었던 샤오르즈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송로 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힙니다. 귀한 풍미만큼이나 채취하는 방법도 범상치 않습니다. 산 속이나 나무 기둥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버섯과 달리, 땅 속에서 자라는 송로 버섯은 사람이 눈으로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돼지'를 이용합니다. 의외로 돼지는 매우 민감한 후각을 갖고 있어, 땅 속에 묻힌 송로 버섯을 기가 막히게 찾아 냅니다. 타이베이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구(蘑菇)'는 이런 돼지의 예리한 코를 활용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다소 엉뚱한 듯하지만, 의미를 알고 보면 그럴 듯합니다.

돼지의 코를 모티브로 만든 모구의 브랜드 로고입니다.

모구는 중국어로 '버섯'이라는 의미로, 돼지 코는 모구의 예리한 관찰력과 유머 감각을 상징합니다. 돼지가 사람을 이끌고 송로 버섯을 찾아 내듯이 모구가 사람들을 선도하여 생활 속 명물을 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모구는 2003년 유기농 면과 천연 염색 기법을 활용한 티셔츠를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의류, 가방, 생활용품, 식료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판매 제품의 디자인에 대만의 소박한 생활 문화를 반영한 것이 특징입니다. 중산(中山)에 위치한 본점에서는 편집숍과 더불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타이베이 중산에 위치한 모구 본점입니다. 1층의 편집숍에서는 의류, 가방,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2층의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판매합니다.
'대만의 100가지 장면'이라는 이름의 헝겊 배지는 모구의 스테디 셀러입니다. 상자 1개에 4개 뱃지가 들어 있는데, 배지 디자인의 모티브는 대만을 상징하는 소재들입니다.

감도있는 라이프스타일 숍이 넘쳐나는 타이베이에서 모구가 긴 세월 동안 명성을 유지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독립 간행물인 '모구쇼우티에(蘑菇手帖)'의 공이 컸습니다. 모구쇼우티에는 모구가 2003년 티셔츠 라인을 런칭하고, 모구 홍보를 위해 발행한 무료 증정용 잡지로 시작했습니다. 책, 주말 여행, 가정식, 별, 생활 용품, 자연의 색깔 등 소박한 콘텐츠들을 다루며 창간 이후 6개월마다 한 번씩 발행되었습니다. 점차 모구쇼우티에의 팬층이 생겨나면서 유료 잡지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는 대만을 대표하는 독립 간행물로 평가 받으며 당당히 모구 매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구 매장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잡지 모구쇼우티에입니다.

이처럼 잡지는 브랜드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매장으로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콘텐츠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번 인정받기 시작하면 쉽게 넘볼 수 없는 저력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콘텐츠의 힘을 가진 잡지가 매장을 열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타이베이의 '샤오르즈(小日子)'입니다. 샤오르즈는 잡지로 시작한 브랜드지만, 잡지의 아이덴티티를 매장에 구현하면서 브랜드를 완성했습니다. 매장이 된 잡지, 샤오르즈에서 잡지의 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1. 일상을 담는 잡지

잡지의 종류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여성지, 남성지, 아동지 등 인구통계학적 분류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했고, 최근 주류로 자리 잡은 잡지들은 패션, 디자인, 경제, 자동차 등 관심사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패션'이라는 분야 안에서도 누군가는 최신 패션 트렌드나 럭셔리 패션에 관심이 있을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일상적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샤오르즈는 기존의 잡지 분류 체계와 달리 분야를 관통하여 '일상'에 관련된 콘텐츠를 다룹니다. 그래서 매 호마다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들을 선정합니다.

샤오르즈는 현대 대만의 일상 생활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상적인 음식, 유행하는 제품, 최근의 현상 등 대만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한 작은 소재들을 잡지에 싣습니다. 스스로를 '일상을 향유하는 잡지(享生活誌, Life Design Magazine)'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제안하는 매체가 되는 것을 지향합니다. 샤오르즈는 잡지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샤오르즈의 독자들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샤오르즈는 매 호마다 대만의 일상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2012년 4월, 창간호의 주제인 '아침식사를 합시다(Let's Breakfast)'를 시작으로, 이후 '생활 공간 속의 그림, 포스터, 사진(Painting, Posters&Photography in Living Space)', '음악없이는 삶도 없다(No music, No Life)' 등 독자들이 일상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수십 개의 주제들을 다뤄왔습니다. 그 중에는 실연 후의 일상을 다룬 '연애 후(After Love)',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관점을 다룬 '인생에게(Dear Life)' 등 일상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 일상에 깊이를 더하는 주제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기록하는 잡지인 만큼, 시대의 현실적인 고민과 정감을 나타내는 주제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와 상관없이 매월 독자들이 관심을 갖거나, 가보면 좋을 만한 전시회, 강연 등을 달력에 표시하여 소개하기도 합니다. 샤오르즈 잡지 한 권이면 일상이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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