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상식에 도전하는 도서관 • 소전서림

Oct 7, 2021
도서관의 상식에 도전하는 도서관 • 소전서림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도서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카타르 국립 도서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만들어진 도서관입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이라 질문이야 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타르 국립 도서관을 지으며 제시한 나름의 답은 뻔하지 않을 수 있죠. 그렇다면 이 도서관은 디지털 시대에 도서관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요?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정보 제공과 지식 교환을 위한 활기찬 공간이었으나,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접근이 즉각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정보 제공보다는 지식 공유의 장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이 도서관을 디자인한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 회사 ‘OMA’의 ‘Ellen van Loon’의 설명입니다. 도서관의 역할을 정보 제공과 지식 교환으로 구분하고 그중에서 시대의 변화에 맞는 역할인 지식 교환에 더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OMA
©OMA

지식 공유의 장으로 재해석한 카타르 국립 도서관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공간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기존의 여러 도서관을 합친 곳인 만큼 건물의 규모가 큰데, 내부가 벽하나 없이 하나의 거대한 방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공간에 중동에서 중요한 희귀사본을 비롯해, 공부, 연구, 협업, 상호 교류 등이 가능한 공간들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카타르 국립 도서관의 차별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합니다. 이 도서관의 진가는 책을 만나는 환경을 새롭게 디자인한 데 있으니까요.

©Qatar National Library

우선 건물 디자인의 독특합니다. 건물을 종이처럼 접어 중앙을 들어올린 모양이죠. 이러면 건축 디자인에 독창성도 생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접근성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들어 올려진 공간을 통해 벽면이 아니라 바로 중앙으로 입장할 수 있어 내부의 어느 곳이건 찾아가기가 쉬워집니다. 입구에서부터 모든 코너까지의 접근성이 동등해지는 셈입니다.

©OMA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내부 디자인에도 의미를 담았습니다. 압도적으로 탁트인 공간의 중앙부를 보면 흰색으로 구성된 상층부와 다르게, 황토색 계열로 디자인된 곳이 있습니다. 색만 다른 게 아니라 지하처럼 6m 정도를 파놓았죠. 과거의 희귀 자료들을 모아둔 헤리티지 컬렉션 구역답게, 고대 유적을 발견하는 듯한 고객 경험을 선사하기 위함입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 보물을 캐는 기분을 듭니다.

©OMA

보이는 곳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곳도 세심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셀프 체크인, 자동 배송 시스템 등으로 자율 도서관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도서관 이용의 편의성을 높였죠. 종이책은 아날로그적이지만, 종이책을 읽는 환경은 디지털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카타르 국립 도서관은 책을 읽는 환경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발길을 도서관으로 이끌고, 도서관을 지식 공유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도서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카타르 국립 도서관 나름의 깊이 있는 답인 거죠. 이 도서관이 재해석한 도서관은 모범적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또다른 답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소전서림’이 도서관을 재해석한 것처럼요.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소전서림은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뜻입니다. 갤러리였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곳이죠. 책의 숲이라는 이름처럼 소전서림은 큐브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형태로 도심 속의 숲을 형상화했습니다. 그 안에는 인문학 중심으로 선별한 4만여 권의 장서가 채워져 있고, 강연과 공연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야 이름이 세련되고 건물이 감도 있으며 문학 중심의 도서관인가보다 라고 여길 수 있는데, 도서관 이용 방법을 알게 되면 보통의 도서관과 확연히 다른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소전서림

소전서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반일 이용권(5시간)은 3만 원, 1일 이용권은 5만원, 연간 멤버십은 최소 66만 원입니다. 도서관은 무료라는 상식이 깨질 뿐만 아니라, 평소 무료로 도서관을 이용하던 우리에게는 꽤나 허들이 높고 비싼 멤버십으로 느껴지죠. 또한 책을 빌려서 외부로 반출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 안에서만 열람할 수 있죠.  

도서관의 상식에 도전하면서 입장료를 받는 걸 보니 분명 소전서림에는 기존의 도서관과는 다른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의 문턱을 낮춰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끌어들이기보다 오히려 문턱을 높여 독서에 진심인 사람들을 불러모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소전서림은 도서관을 어떻게 재해석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가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을까요?

1. 책뿐만 아니라 공간을 빌린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미쉐린 스타 셰프 요리를 먹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요리를 집에서 배달 시켜 먹을 때와 미쉐린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 맛이 같을까요? 만약 배달 시켜 먹는 것과 현장에서 바로 먹는 것 사이의 차이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면, 이런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치킨을 집에서 시켜 먹는 때와 한강 고수부지에서 시켜 먹을 때를 말이죠. 레시피가 완벽히 똑같다고 해도 아마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음식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도 환경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서의 경험이 달라지죠. 그래서 소전서림은 책만큼이나 공간에 신경을 썼습니다. 독서에 진심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책 읽는 경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공간을 구현했죠. 그렇다면 소전서림은 책 읽을 맛이 나는 공간을 어떻게 꾸몄을까요?    

©소전서림

우선 책을 읽는 환경을 다양하게 구성했습니다. 중앙 서재인 메인 홀은 반듯하면서도 감각적인 공간입니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벽면 상단의 디자인에 있습니다. 이곳은 층고가 높은데, 책장 위의 상단부가 벽돌을 쌓은듯이 반듯하게 구성되어 있고, 이 벽돌같은 벽면에서 하얀 빛이 발산되고 있어 감각적으로 보이는 거죠. 공부를 시작할 때 책상부터 정리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입니다. 또한 예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인 예담은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곳입니다.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아 여백의 미가 느껴지고, 벽면에 걸린 예술 작품들이 여백에 무게감을 더해줍니다. 여기에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빈 그네가 공간을 낭만적으로 만들죠.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여기에다가 개인 서재 공간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여러 명이 함께 책을 보란 법은 없으니까요. 자기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지면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공간입니다.

공간 구성뿐만 아니라 각 공간에 비치된 의자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앉아서 읽는 행위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죠. 보통의 경우 일상에서는 앉아볼 기회가 없을 핀 율, 칼 한센앤선, 아르텍, 카시나, 프리츠 한센 등의 디자인 체어를 곳곳에 두었습니다. 이런 디자인 체어는 단순히 디자인이 멋져서가 아니라 앉았을 때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유명한 거죠. 또한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정육면체 좌판이 움직이면서 자세를 올곧게 유지해주는 의자까지 제작했습니다. 여기에다가 그네처럼 움직이는 스윙 체어, 황금알 낳는 거위 체어 등 앉는 행위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력을 시도한 의자도 볼 수 있습니다. 독서에서 의자를 떼어 놓기는 어렵기에 소전서림은 고객들이 더 편하게 혹은 새롭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의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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