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적지를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방법 • 타이쿤

May 28, 2021
역사 유적지를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방법 • 타이쿤

유적지가 오래되고 희소하며 보존이 잘 되어 있을수록 역사적 가치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역사적 의미도 지키면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 보존 외에 또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옛 경찰서, 관공서, 교도소로 이루어진 홍콩의 타이쿤(Tai Kwun)에는 연간 340만 명이 방문합니다. 무엇이 150년 된 유적지를 이토록 핫하게 만들었을까요?

홍콩은 도박의 나라입니다. 성인인구 열 명 중 여덟 명이 도박을 합니다. 청소년 열 명 중 네 명이 도박을 하며, 그 중 세 명은 10살 이전에 도박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경마, 로또, 스포츠 토토 등 도박 사업을 독점 운영하고 있는 홍콩 자키 클럽(Hong Kong Jockey Club)의 벌이가 쏠쏠합니다. 홍콩 세수의 7%를 웃돌아 수년째 최대 세원 지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연 홍콩 정부의 ATM이라고 불릴 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가 나서서 사행 사업을 장려해도 되는 것일까요? 홍콩 시민들의 비판은 없을까요?

홍콩 자키 클럽의 사명을 보면 도박에 대한 홍콩 사회의 관대함이 이해가 됩니다. '말을 통해 정부의 세수 확보에 기여하고, 홍콩 시민을 위해 최고의 자선과 기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실제로 세금과 최소한의 운영비를 제외한 이익 잉여금 전액을 홍콩 지역 사회에 기부합니다. 이를 통해 홍콩 인구의 75%가 수혜를 받으며, 규모 면에서 자선 기부단체 세계 랭킹 6위에 오를 정도입니다. 기부액에서 예상할 수 있듯 도박 사업 수완도 뛰어납니다. 도박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얼마간 인정하고 불법 도박으로 빠질 수 있는 수요를 양지에서 관리하자는 것이 이들의 방향성입니다. 그래서 핵심 사업인 경마의 경우 고객이 경마장에 오지 않고도 어플로 원격 베팅을 할 수 있게 하고, 베팅 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는 등 문턱을 확 낮췄습니다. 또한 총 베팅 금액 중 고객이 가져가는 금액의 비중인 환수율을 높이고, 베팅 손실액에 대한 리베이트를 하는 등 보통 불법 도박에서 쓰는 유인책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그러면서도 매년 3억 6천 만 홍콩달러(약 567억 원)를 도박 중독 예방에 써서 도박이 건전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게 합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시권 안으로 들여 관리하기에 중독 예방도 효과적입니다. 그 결과 홍콩의 도박 중독률은 1.4% 정도로 3.2%인 미국과 2.5%인 영국보다 낮은 수준이며, 불법 도박은 0.1%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재정적인 목표를 극대화하면서 공공성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홍콩 자키 클럽이 10여 년간 38억 홍콩달러(약 5,963억 원)를 투자한 사업이 있습니다. 옛 중앙 경찰서, 중앙 관공서, 교도소로 이루어진 타이쿤(Tai Kwun)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보통 교도소를 도심 외곽에 두는데, 필요 기관을 한 데 모아 두어 원스톱으로 사법 절차를 집행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적입니다. 영국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1864년부터 1925년까지 센트럴 지역 8,430평 부지에 차례로 지어졌으며, 16개의 건물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베트남 정치 지도자 호치민이 수감된 이력이 있는 등 역사적 의미도 깊습니다.

과거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위압감을 주던 곳이었지만 어느덧 타이쿤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초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빽빽한 도심의 밀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홍콩 자키 클럽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고고한 박물관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이상 홍콩 자키 클럽은 타이쿤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 모두를 책임져야 합니다. 복원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은 물론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유지 비용도 클테니,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탄탄한 수익 창출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상업 시설처럼 접근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역사 유적지로서의 공공성과 상업성과의 균형을 고민해야 합니다. 마침 2008년 정부 주도의 '역사적 건물 재활성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헤리티지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논의가 벌어지던 차였습니다. 나름 홍콩 사회에서 명망 높은 홍콩 자키 클럽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걱정 반, 의심 반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2018년 5월, 10여 년만에 문을 연 타이쿤은 사람들의 불안을 깔끔하게 잠재웠습니다.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소 2018'로 선정하기도 하고 1년간 340만 명이 방문하는 등 명실공히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유적지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구조에 손대지 않되 재해석한다

타이쿤은 기존 건물을 거의 변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어졌을 당시의 원상태를 복원하기 위해 상당한 추가 자금과 시간을 들였습니다. 벽면 갈라짐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복원 작업을 했던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32번 덧칠된 페인트를 사포로 문지르지 않고 고압 수증기로 벗겨내고, 정 복원이 어려울 때는 비용이 수 배에 달하더라도 영국으로부터 자재를 맞춤 주문해 대체했습니다. 법이 바뀌어 건축 구조의 변형이 필요한 경우에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예외적으로 보존 허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현 규제 하에서는 16단 이상으로 연속된 계단을 만들 수 없지만, 1층부터 3층까지 방향 전환 없이 길게 이어진 일자형 계단을 보존하기 위해 3톤 하중 테스트를 하고 미끄럼 방지 자재를 덧대며 안전성을 증명했습니다. 이렇게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타이쿤이 150여 년간 축적해 온 시간이 차별성의 근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들여 지켜낸 하드웨어의 효용을 높일 차례입니다. 타이쿤의 공간들은 바,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 등으로 용도를 바꿨는데, 바뀐 용도와 공간의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됩니다. 미치 애초부터 이 용도로 쓰기 위해 만든 것처럼 공간의 구조적 특징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운영합니다. 빅토리아 교도소의 E홀을 칵테일 바로 바꾼 '비하인드 바(Behind Bars)'가 대표적입니다. 감옥에서 한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지만, 긴 복도를 중심으로 1평 남짓한 독방이 양쪽에 길게 늘어선 감옥 특유의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한 덕에 더욱 술맛이 돕니다.

일단 독방 구조를 살려 프라이빗한 룸으로 만듭니다. 독방 사이의 벽을 외곽 프레임만 남기고 터두어 너무 답답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옆방과 적절히 분리합니다. 자연히 손님들이 다른 독방을 거치지 않고 독방의 쇠창살 문으로 각각 출입하기에 프라이버시가 보장됩니다. 각 독방의 좌석이 중앙 복도를 향해 있기에 옆방과 불필요하게 시선을 주고 받는 일이 줄어듭니다. 손님이 계산대에 와서 주문하고 직접 가져가는 주문 방식도 감옥의 독방 구조와 잘 어우러집니다. 만약 자리에서 주문을 받거나 술을 자리로 가져다주면 서버가 독방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공간이 협소하거니와 독방의 프라이빗함을 잠시나마 해치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이 몰리는 계산대와 픽업 카운터를 좌석이 있는 반대편 라인에 두어 동선을 정리함으로써 독방의 프라이빗함을 더욱 지켜줍니다. 이렇듯 비하인드 바에서는 옛 감옥이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구현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감옥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맛 - 비하인드 바'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감옥 식단을 전시한 D홀 끝에 간편식 레스토랑을 두고, 경찰서 본부 건물 2층의 통행용 아케이드 공간에 레스토랑 테이블을 두어 퍼레이드 광장을 조망할 수 있게 했으며, 교도소의 널찍한 야외 세탁장은 계단을 의자 삼아 관람할 수 있는 2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찰떡같은 용도를 더해줌으로써 사람들이 옛 공간들을 보다 충분히 향유할 수 있습니다.

타이쿤 밖에서 본 JC 컨템포러리와 F홀입니다. 석조 외벽과 JC 컨템포러리의 알루미늄 외피의 패턴이 닮아 세트처럼 보입니다. ⓒ헤르조그 & 드 뫼롱
JC 큐브의 알루미늄 외피를 자세히 보면 패턴이 불규칙한 석조 외벽을 벤치마킹해 구멍의 크기, 방향, 간격이 모두 다릅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공연장은 실내 공연장이며, 1층 이하는 세미 야외 공연장으로 씁니다. ⓒ헤르조그 & 드 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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