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읽고 있는 잡지는 무엇입니까? • 더 모노클 숍

May 26, 2021
당신이 읽고 있는 잡지는 무엇입니까? • 더 모노클 숍

종이 잡지를 발행하는 ‘모노클’은 카페와 편집숍도 운영합니다. 잡지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 매장을 연 것이 아닙니다. 모노클이 잡지의 지면을 벗어나 공간으로 나온 데에는 경제적 이유 이상의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눈을 밟는 기억’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브로셔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낭만적이지만 추상적이어서 구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을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과 체계를 구축한 ‘하라 켄야’가 고차원적으로 풀어냅니다. 20여 년 전에 그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의 브로셔 디자인을 총괄하면서 올림픽 참가자들이 만들 축제의 추억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브로셔를 단순히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경험을 떠올려 줄 매체로 접근하고, ‘눈을 밟는 기억’을 연상시키기 위한 브로셔 디자인을 고민했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며 걸었던 기억의 풍경을 브로셔 위에 구현할 수 있다면, 브로셔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의 풍경을 불러내는 방아쇠 역할을 할 것이고 그 잔상이 동계 올림픽의 추억과 결합되어 또 다른 기억의 풍경을 남길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가노 동계 올림픽 개막식 브로셔입니다. 글자만으로도 소복히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며 걸었던 기억을 연상시킵니다. ⓒNippon Design Center

‘눈과 얼음의 종이’

그가 눈을 밟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종이입니다. 브로셔의 소재에 주목하고 푹신푹신한 흰색 종이에 문자를 모두 음각으로 새기는 디보스(Deboss) 기법으로 브로셔를 디자인했습니다. 여기에 발자국 이미지를 연상시키려 문자를 눌러 찍은 부분이 얼음처럼 반투명하게 보이는 효과를 줬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은 폭신한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발자국이 남은 눈은 밀도있게 눌려있는 디테일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구현할 수 없어서 제지 회사와 함께 새로운 방식을 연구할 정도로 눈을 밟는 기억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글자를 음각으로 표현한 브로셔와는 차이가 나고, 기억의 저편을 소환할만큼 예술적 감각을 자극합니다.

‘종이와 디자인’

종이의 소재성을 살려 브로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그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2년 만인 2000년에 열었던 전시회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 급변하던 시기에 종이책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의도로 전시회를 기획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책의 몰락을 우려할 때 그는 종이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정보를 유통하는 속도와 밀도, 그리고 정도 등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와 경쟁할 수 없으니 종이책은 그동안 해왔던 미디어의 역할을 디지털에게 넘겨주고, 물질로서의 소재성이 부각될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먹거리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어 달걀 1,000개를 한번에 조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식사를 즐기기 위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만큼의 달걀을 삶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껍질을 벗겨 적당량의 소금과 함께 먹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디지털 미디어가 아니라 종이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책을 들었을 때의 무게감, 페이지를 마음 가는대로 넘기는 기분, 시간과 함께 빛바래는 분위기 등 그 소재의 성질과 특징을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종이책은 소재성을 어떻게 살리는지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스스로 증명해 보였기에 그의 말에 힘이 실립니다.

그로부터 7년 후, 하라 켄야가 <종이와 디자인> 전시를 할 때 알았더라면 초대했을 법한 종이책 같은 잡지가 런던에 등장합니다. ‘모노클(Monocle)’입니다. 하라 켄야가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전시를 할 때보다 디지털 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매체로서 더 견고하게 자리잡은 2007년, 타일러 브륄레(Tyler Brûlé)는 종이 매체의 한계보다는 가능성을 보며 모노클을 창간합니다.

모노클의 시작은 1호가 아닌 0호였습니다. 하지만 0호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매거진이 독자들에게 전할 촉감과 무게감 등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의 소재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하라 켄야의 통찰대로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체 모를 정체성이 뚜렷한 잡지의 탄생

모노클을 만든 타일러 브륄레는 이전에도 잡지를 창간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6년에 라이프 스타일 잡지 <월페이퍼(Wallpaper)>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여행, 패션 등의 분야를 감각적으로 다루면서 독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제안한 덕분입니다. 열성적인 팬들이 생기자 미디어 업계의 큰손인 타임워너(Time Warner)가 230만 달러(약 25억 3,000만 원)에 인수에 나섰습니다. 창간 1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매각 후에도 타일러 브륄레는 2002년까지 남아 브랜드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임무를 마친듯 월페이퍼를 떠납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로 종이 매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타일러 브륄레는 또다시 종이 잡지 업계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공항 서점에서 <이코노미스트(Economist)>와 <GQ>가 잘 팔리는 것을 보고 이 둘을 적절하게 결합한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불현듯한 아이디어였지만, 종이 매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에 월페이퍼에 이어 또 한 번 잡지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모노클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글로벌 동향, 비즈니스, 문화,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브리핑(A briefing on global affairs, business, culture & design)’

모노클의 모토입니다. 보통의 잡지가 여행, 자동차, 디자인 등 카테고리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반면, 모노클은 특정 타깃층을 중심으로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글로벌 동향, 비즈니스, 문화, 디자인 등의 콘텐츠를 담습니다. 타깃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새로운데, 설정한 타깃 자체는 더 흥미롭습니다. 해외의 기회와 경험에 호기심이 있고 글로벌 마인드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타깃이며, 모노클이 타깃하는 독자들의 평균적인 모습을 도출하면 평균 연봉 20만 파운드(약 3억 원) 이상으로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가량 가고, 5번의 휴가를 즐기며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디자인 업계 등의 CEO입니다. 여기에 잡지의 개념도 달리했습니다. 일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크(Mook[Magazine+Book])지에서 영감을 받아 한 번 쓱 읽고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읽는 데 2주가 넘게 걸리고 보관할 가치가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책에 가까운 잡지입니다.

기존의 기준으로는 정체 모를 잡지입니다. 라이프 스타일과 비즈니스 코너 중 어디에 놓여있는 것이 적합한지도, 영국 국내 독자와 해외 독자 중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책처럼 읽어야 하는지 잡지처럼 읽어야 하는지도 모호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면 모노클의 정체성은 뚜렷합니다. 모노클이 타깃하는 독자라면 모노클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매달 8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모노클의 브랜드 정체성에 끌려 모노클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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