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 매장 • 바쉬

May 26, 2021
낙서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 매장 • 바쉬

‘바쉬’는 최저가를 보장하는 다이아몬드 반지 매장입니다. 하지만 가격 파괴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가격이 가치를 반영하는 신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딜레마의 상황에서 바쉬는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까요?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쩌다 결혼의 증표가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마가렛 F. 브리니그(Margaret F. Brinig) 교수가 조지메이슨 대학(George Mason University)에 재직 당시 연구했던 내용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브리니그 교수는 1930년대에 다이아몬드 반지의 수요가 급증한 이유를 법률의 변화로 풀어냅니다. 다이아몬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법률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법원 판결이 바뀐 것이 다이아몬드 반지 수요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합니다.

193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파혼할 경우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그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시대여서 결혼이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약속이 깨질 경우 여성은 정신적 충격은 물론이고, 경제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도 힘든 환경에서, 당시의 사회 정서상 파혼한 여성이 다시 결혼 상대를 찾을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그래서 불합리하게 파혼을 당한 여성들은 법적인 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 파혼에 대한 판결에 달라졌습니다. 금전적인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등 파혼에 따른 남성들의 처벌 수위가 약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개선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성이 결혼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더 커진 셈입니다. 여성들에게는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여성들이 주목한 것이 다이아몬드 반지였습니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약혼할 때 남성들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도록 했습니다. 약혼에 대한 비용을 발생시켜 청혼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파혼도 신중하게 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여성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게 되자 경제적 유인 구조로 약혼의 위험성을 낮췄습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또 다른 의문이 남습니다. 비용을 치르게 하는 목적이라면 다른 비싼 보석들도 많았을텐데 왜 하필 다이아몬드였을까요?

다이아몬드가 ‘융통성의 원칙’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격은 신중한 선택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지만, 보편적인 유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고가의 보석만 허용되었다면 소수의 남성만 청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성이 원하는 것도 비싼 보석이 아니라 값진 마음입니다. 그래서 남성의 경제적 형편에 맞춰 여성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대를 조정할 수 있어야 유효한 경제적 유인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캐럿(Carat), 색상(Color), 커팅(Cutting), 투명도(Clarity) 등 4C의 조합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기본적인 가격대가 고가여서 누구나 가치있다고 인지하는 대상인데다, 4C의 수준별로 차등적인 가격의 다이아몬드를 주머니 사정에 맞게 구매할 수 있어 결혼의 증표로 널리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 반지는 부담스러운 가격대입니다. 4C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반지 자체의 가격대를 낮출 수는 없을까요? ‘바쉬(Vashi)’는 또 다른 3C를 통해 영원할 것만 같던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격을 반값에 가깝게 낮추면서도 영원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가격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

바쉬에서는 고객들이 같은 사양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을 발견하면 그 차액의 2배를 보상해줍니다. 할인마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가격 보상 정책을 다이아몬드 매장에 적용한 것입니다. 어느 영역에서나 가격 파괴 모델은 있기 때문에 새롭지 않을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면 바쉬가 만들어낸 가격 경쟁력이 다르게 보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비싼 건 수요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영국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De Beers)가 공급량을 조절해 가격을 높게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기 침체기와 1920년대 말 경제 대공황 때 드비어스는 긴축 재정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파산한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들을 사들여 가격을 좌지우지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아프리카와 시베리아 등에서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면서 공급량이 늘어나는가 싶었는데,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유통량의 80%를 사들여 또다시 가격을 지배합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산업용 다이아몬드 수요 증가로 큰 돈을 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러시아, 호주, 캐나다 등에서 광산이 추가적으로 발견되며 공급량이 늘어나자 드비어스의 시장 장악력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까지 80%가 넘던 점유율은 2010년대 들어 30%대로 급락했습니다. 드비어스는 여전히 주요 사업자이지만 시장 가격을 좌우할 만큼의 영향력은 잃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 유통 시장의 폐쇄성에 있습니다.

생산이 닫혀있던 만큼 다이아몬드를 유통할 수 있는 업자들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산업에 종사한 가문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독점적 유통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너 써클이 아닌 이상 다이아몬드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이너 써클이 아닌 유통업자들에게는 신뢰 관계가 충분히 쌓여야만 다이아몬드를 공급했습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기에 가격이 낮아지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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